위그르 교통수단 마차
7월29일 아침 5시경, 투르판에 도착한다.
투루판은 위그르어로 '패인 땅"이라 한다.
투루판 분지는 뜻만큼이나 중국에서 가장 지대가 낮다.
여름은 대단히 더워 "화주(火州)라고도 하며, 기후의 특성상 포도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씨가 없는 청포도로 껍질이 얇고, 당도가 높다.
다만 모래 먼지가 붙어있기 때문에 싰어 먹어야 한다.
위그르 족들이 전체 인구의 73%를 찾이 한단다.
고창고성 유적
호텔에 여장을 맡기고, 곧바로 고창고성을 찾아 나선다.
옛 고창왕국의 유적지로 후한이 멸망한후 번성했던 투루판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불타오르는 듯 화염산을 배경으로 폐허만 남아있다.
기원전 1세기에 고창성벽이 지어졌으나, 13세기에 전쟁으로 훼손되었다.
흙벽돌로 축적된 사각형 벽돌을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버들가지나 마른 풀들을 섞었는데
왕국이 망한후 주위 농부들이 벽돌을 깨어서 비료로 쓰는 바람에 폐허가 되었다 한다.
지금은 사원과 궁전 유적 이외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파손되어 있다.
나귀가 끄는 수레에 타고 유적지를 둘러본다.
고창고성 입구에서 부터 한무리의 소년 소녀들이 울긋불긋한 위그르의 전통의상을 입고
기념품이나 장신구 따위를 팔아달라고 간청 한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맑고 천진하며, 티없이 밝고 순결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위그르 소녀
다음으로 고대 귀족들의 묘지인 아스타나 고분을 둘러본다.
이곳에서 발견된 미이라들이 우루무치 박물관에 보관되어있고, 이곳에도 전시되어 있다.
다음으로 차아간 곳이 화염산이다.
화염산은 동서 길이가 100km, 남북 길이가 9km에 달하고 최고봉이 851m로 홍사암으로 되어
있고, 주위에 온도가 중국에서 가장 높단다.(최고기록 82.3도)
화염산의 온도가 높은것은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분지가 태양을 향해 기울어 있기
때문이란다.
서유기에서 삼장법사 일행이 화염산의 뜨거운 불을 진압하기 위하여 철옹공주의 파초선을
빼앗아 사용했다한다.
불타는듯한 화염산
화염산 근처에 있는 베제크리크 천불동 유적지를 먼저 둘러본다.
화염산의 모래 절벽에 굴을 파고 승려들은 좌선과 참선의 수행을 했다한다.
전체 석굴수는 83개라 하는데 개방되고 있는것은 고작 20개 정도다.
더우기 20세기 초반 탐험대들이 석굴의 벽을 알뜰히 긁어서 진기한 그림들을 모두 벗겨갔다.
지금은 누런 흙벽에 원래의 광경을 찍은 사진만이 한장씩 붙어 있을 뿐이다.
또 불상의 눈 부분을 파낸 흔적이 있는데 불교를 증오하는 무슬림등 다른 종교 세력들이
이런 몰지각한 파괴행위를 했다 한다.
수년전 아프카니스탄에서 회교원리주의자들인 탈레반 병사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불교문화의 유적지인 바미얀 석굴을 파괴한 사건이 생각난다.
베제크리크 천불동
이곳 베제크리크 유적과 유물들은 13세기 몽골의 침략군들이 한차례 파괴하고, 14세기
이슬람 세력이 장악하면서 엄청난 수난을 당하고, 그나마 남아있던 유물조차 중국의
근대초기 서양과 일본의 수집가들이 떼지어 몰려와 벽화와 불상을 깡그리 훔쳐간다.
천불동 아래 골짜기로 빙하가 녹은 물이 세찬 격류가 되어 누렇게 흐르고 있다.
이 강을 무르토크(木頭溝) 강이라 한다.
두 하천 사이로 치솟은 30m의 벼랑위에 세워진 교하교성은 아직도 고고학자들이 고성을
발굴하고 있단다.
교하국은 실크로드의 천산남로와 천산북로에 위치하여 교통의 요충이었던 왕국이었다.
14세기 전반, 원나라와의 전쟁에서 훼손 되었단다.
고성 안에는 불탑과 사원, 관청, 감옥과 민가의 흔적이 있고, 이 성이 오래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벽돌로 쌓아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교하교성 유적
투루판 일대에 지하수를 지면으로 끌어올리는 수리시설인 카레즈를 찾아간다.
만리장성, 대운하와 함께 카레즈는 고대 3대 공사중에 하나다.
지하 깊이 지하수를 개발하고 그 지하수를 잊는 수로를 지하로 연결하는 방법으로 지하수를
낮은 지대의 지면으로 끌어올린다.
투루판 지역의 하미과와 포도를 재배하는데 카레즈가 이용되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포도를 한광주리 사서 일행과 같이 나누어 먹는다.
투루판 포도
좀 일찍 관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Business center에서 바이어와 메일을 주고받고
몇일 밀렸던 빨래를 한다.
해거름 해서 호텔 입구에 기다리는 나귀가 끄는 마차를 타고 야시장으로 간다.
나귀가 달릴때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가 지는 석양에 정겹게 들린다.
오늘 양고기 메뉴는 꼬지구이가 아니라 수육같이 삶은 양고기다.
갈비와 다리뼈에 붙은 연한 고기 살점이 입안에서 녹을때는 작년 여름에 몽골 고비사막에서
양한마리를 잡아 동네 사람들과 삶은 수육으로 포식했던 생각이 난다.
주인과 도민증(?) 대조를 하는데 나보다 8살 아래인 56세라 하며 나보고 젊어 보인다나 뭐래나...
큰딸, 두째딸과 같이 운영하는데 딸들은 국수와 만두를, 영감님은 수육을 전문으로 만든다.
도로에서 팔고있는 하미과를 사서 주인과 같이 후식으로 먹는다.
하미과를 잘르는 모양이 어눌해 보이는지 주인이 능숙한 솜씨로 잘라준다.
또 오늘 밤도 포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