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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고있는 딸아이...

가족 이야기

by master 42 2012. 2. 20.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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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번이 큰외손자넘이다. 제법 드리볼을 잘 하는것 같다.

 

오랫만에 미국엘 왔다.

1981년 가을에 처음오고 이번이 두번째다. 30년만인다.

4년전 미국으로 와서 워싱턴에 살고있는 딸아이가  지금 까지 했던 대학구내 식당일(사업?)을 그만두고

새로운 업체를 계약했다며  2월 한달간은 시간이 많다며 다녀갔으며 하는 말을 듣고 급히 서둘러 왔다.

파키스탄에서 오더를 받어 떠나기 전에 자제구매 부터 모든 제작준비를 해 두었기에 3월말 선적에는 문제가 없을것 같아

마음놓고 떠났다.

 

2008년에 미국에 온 딸아이는 엄청 고생을 했는것 같다.

남편의 지인으로 부터 대학에서 직영하던 구내식당이 민간인한테 불하한다는 소개를 받고 인수를 했고, 몇달간 한국에 있으며

지배인으로 부터 매일 인터넷으로 일보를 받아보니 4개월여 30% 이상의 매출이 적자로 운영되었다.

급히 서둘러 비자를 받어 미국에 들어와 보니 적자요인을 금방 알수 있었다.

또 교포사회에서 오랜동안 매물로 나왔는데 적자운영되니 아무도 원매자가 없었던 물건이 한국으로 흘러들어와서 

아무것도 모르던 딸아이가 덥석 물었던 것이다.

 

2008년 3월에 들어와서 팔걷어붙이고 적자원인을 찾아 하나하나 차근차근이 정상화 시키는데 온힘을 기울였다.

우선 지배인 까지 18명이던 인원을 9명으로 줄이고, 겁없이 쌓아놓았던 식품재료의 재고를 이틀분으로 줄여 나갔다고 한다.

양파같은 신선한 채소등의 재료는 공급처에서 미리썰어서 진공포장된 값비싼 재료를 쓰던것을  그날그날 시장에서 구매하여

딸아이 직접 종업과 썰어 만드니 구매재료값의 비중을 80%나 줄였다고 한다.

 

1회용 고급 포크나 접시들을 싼것으로 바꾸고, 무한으로 주던 켓찹등을 1개로 줄이고, 물티슈도 달라고 하는 사람한테만 주었다.

또 바쁠때는 직접 서빙으로 부터 닭튀김등의 요리도 손 부르트게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종업원들이 깔보는 눈치였으나 점점 당차게 해 나가는 주인의 모습을 보고 모두들 협조하여

6개월만에 흑자로 돌아섰다고 한다.

 

 

 

 

 

인수할때  30%작자였던 식당을 1년만에 30% 흑자 식당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교포사회에서는 처음에는 젊은아낙이 미국에와서 얼마간 고생하다가 말아먹고 갈것이라고 걱정했는데 성공하는걸 보고 놀랐다고 한다.

손에 못이 박히도록 죽기살기로 열심히 일 했다한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아이들 학교에 보내고 출근하여 하루종일 일하고  다음날 새벽 1시에 퇴근하고 집에 오면 2시가 다 된단다.

학생들 시험기간에는 밤 2시넘어 마치고 집에오면 3시가되고 또 아침 7시에 일어나 손자 둘이를 아침먹여 학교에 보낸다고 한다.

 

이렇게 4년여를 하는동안 내가 남미배낭여행 갈때 한번 찾아갈려고 했더니 바쁘니 오지말라고 했었다.

대학이 방학 할 때 두번 한국을 다녀간적이 있다.

작년 년말에 4년여를 운영하던 구내식당을 대학으로 돌려주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시내 번화가에 패스트푸드점을 계약했다.

백악관이 눈앞에 보이는 번화가, 오피스 건물들이 즐비한 워싱턴 DC 중심이다.

 

아침 5시반에 출근하여 오후 4시에 퇴근 할 수 있다며 엄청 좋아한다.

또 사무실들이 노는날이면 가게도 논다고 한다.

아침 7시부터 9시반까지 바쁘고, 점심시간때 또 바쁘다고 한다.

 

 

심판이나 코치선생님들은 모두 학부모들이다. 자원봉사를 한다고 한다.

모두들 열심히다.

 

 

 

 

 

이제 딸아이는 자리를 잡은것 같다.

처음 미국에 와서 아무것도 몰랐으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가 생각해 보니 내 마음이 아렸다.

며칠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딸아이는 이제는 많은 경험을 갖고 또 새로운 출발을 한다며 환하게 웃는다.

내게 아무 걱정을 하지 말라며 마냥 안스러워 걱정하는 나를 위로해 준다.

또 딸아이는 나보고 "아빠, 나도 아빠 닮아서 도전을 겁없이 잘 하잖아..." 하길래 한참을 웃었다.

정말 딸아이는 나를 많이 닮은것 같다.

 

어제 토요일, 외손자 둘과 딸아이 데리고 처음으로 시내구경을 나섰다.

가기전에 초등학교 4학년인 큰손자넘이 농구시합을 한다고 해서 카메라 갖고 따라 나섰다.

1학년인 두째넘도 데리고 가는데 미국온지 4년밖에 되지않은 둘이는  친구들과 잘 어울린다.

모두 여자친구 있다며 사진도 보여주고, 생일때 초대도 많이 받어 간다고 한다.

오늘도 큰 손자넘이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되어 다녀왔다.

손자들은 한국에 있을때 보다 더 밝아져 보이고, 씩씩해 보인다.

 

딸아이가 처음에는  골방같은 아파트 방하나를 얻어 잠만자고 생활하다가 학기가 시작되기전 여름에 아이들을 데리고와서

방두칸 아파트를 얻어 한동안 살았고, 2년전 현제 살고있는 주택으로 이사와서 살고있다. 학군이 좋고 이웃들이 좋다.

이웃끼리 서로 아이들을 보살펴 주고, 어려울때 도와가며 살아간다.

미국은 아이들을 등교시킬때나 하교할때는 스쿨버스를 이용하는데 보호자가 꼭 있어야 한단다.

딸아이는 처음에는  차가 없을때 일하다가  지하철 타고 집으로 와서 아이들을 스쿨버스에서 받기도 했단다.

한동안 어렵게 지내다가 산타페차를 한대 사고나니 고급벤츠보다 더 좋더라고 한다

 

며칠간 매일 딸아이와 이야기하며 딸아이의 자신감을 들어보지만 나는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다.

딸아이는 미국 생활에 익숙해져 있지만 그래도 유색인종이라 걱정만 앞선다.

며칠후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딸아이의 자신감만 믿고 간다.

아마 딸아이도 걱정되고 보고 싶겠지만 귀여운 똘망똘망한 손자넘들이 자주  눈앞에 어른거릴것 같다.

 

모두들 무탈하게  잘 살어라....

 

 

 

 

 

 

 

 

 

월남참전기념공원이다.

참전용사의 이름을 찾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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