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큰손자가 중학교 3학년때
아들 가족과 같이 혹가이도로 "가족 추억 만들기여행" 갔을때 사진이다.
일행중 한 사람이 "아버지가 두 딸과, 두 아들을 데리고 여행 왔네"라고 하는 이야기에 모두 넘어졌다.
우리 집안의 가계 내력은 아마 선대부터 머리숱이 많이 없는 대머리 가계인 것 같다.
난 막내로 컷기 때문에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내가 일제 강점기 일본 오오사카에서 태어났을 때는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안계셨다.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그리고 나의 아버지는 모두 대머리셨다. 그리고 고혈압이셔서 돌아가시기 전에 모두 중풍으로
고생 하셨다. 어머님은 내가 나이가 들어가니 언제나 하시는 말씀이 고혈압에 주의 하라고 하셨다.
아니게 아니라 내 나이 50을 갓 넘겼을 때 내가 고혈압이라는 걸 알았고 그때부터 지금 까지 고혈압을 조절하는 약을 먹고 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부터 머리를 기르기 시작하고 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 시험을 칠 때 면접관이 내게 나이가 몇이냐고 물었다.
그만큼 나이가 들어 보였던 것이다. 내가 결혼할 때 처제들이 형부가 대머리라고 흉(?)을 봤던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머리숱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지냈다. 항상 가는 빗을 갖고 다니며 머리를 빗고 다녔다.
머리숱이 적으니 빗는 다기 보다는 머리카락을 오른쪽으로 널었다. 머리숱이 없으니 햇살이 뜨거운 여름과 몹시 추운
겨울이 힘드는 계절이다.
50대 중반 어느날, 아침 조깅을 마치고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는데 한참 졸고 머리를 보니 가르마가 없다.
이발사 한테 “가르마가 없어졌네?” 하니 이발사가 엄청 당황하며 머리카락을 이리빗고 저리빗으며 어쩔줄을 몰라해서
내가 얼른 “이발사님, 괜찮아요.”하며 머리카락을 쓰윽 위로 쓰다듬으며 “이발사님 덕에 이제부터 머리숱으로부터
자유스러워 졌소.”했다.
그 후 60대가 되고 지금 까지 모자를 쓰고 다닌다.
오늘도 아침에 아내 병실로 가니 아내가 목욕을 마치고 누워 있어서 일으켜 세워 보행기를 갖다 주며 걷는 운동을 하자고 했다.
오늘은 잘 걷는다. 바깥 복도 까지 두 번이나 걸어 다녔으니 평소 보다 2배를 더 걸어 100여m를 걸었다.
아내가 잠시 쉬자고 해서 의자에 앉아 쉬면서 목욕하고 빗지 않은 헝클어진 땀난 머리카락을 내 손으로 빗어 주었다.
얼마 만에 쓰다듬어 보는 아내의 머리카락인지 모른다. 순간 보드랍고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의 감촉이 내 손가락으로
촉촉이 느껴 온다. 그리고 자세히 아내의 머리숱을 들여다 보았다. 흰 머리카락이 몇 개 보일락 말락하는 검은 머리숱이다.
아직도 머리카락은 건강해 보인다.
은은한 샴푸의 향내가 내게로 퍼져 온다.
난 몇 번이고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어 보며 젊은 아리따웠던 색시 시절의 추억속으로 빠져 들었다.
장인어른은 나이 들어서 돌아가실때 까지 흰 머리카락이 없었다. 두 처남, 두 처제 모두 나이 들어도 흰 머리카락이 없는
건강한 검은 머리숱을 갖고 있다.
장인어른은 기골이 장대 하셔서 슬하의 자식들이 모두 키가 크다. 유전학적으로 모두 장인어른의 DNA를 받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보통 키 인데 아들과 손자들은 모두 키가 크다.
내 가계는 키에 관해서만은 확실히 풍종 개량(?ㅎㅎ)은 된 것 같다.
모두 처가 덕이고 아내 덕이다.
그런데 아들은 젊어서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모두 내 집안 가계의 DNA가 우성으로 유전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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