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산 월아천
7월27일, 오늘은 실크로드 꽃인 돈황으로 간다.
8시간 넘게 사막을 달려야 하는데도 모두들 돈황의 자료들을 읽고, 서로들 정보를 교환하며
돈황을 만나는 기대로 가득차 있다.
이곳 부터 서역 땅이다.
서역땅 답게 사막으로 부터 시작이고 사막으로 끝날것 같다.
사막에 주욱 뻗은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서역으로 달리는 화물트럭 행열
중국은 이곳 불모의 땅에 끝없는 길과 철길을 닦아 놓았다.
많은 물자들이 서역으로, 또 동으로 옮겨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서역으로, 또 동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이곳을 발전 시키고 변화 시킬려고 한다.
그래서 많이들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포크레인과 불도저의 케터필러 소리가 우렁차게 사막을 변화시키고 있다.
황량한 불모지 사막
소수민족들 속에 한족을 옮겨 놓아 더불어 살아가도록 한다.
소수민족들을 한족이 중심되어 살고있는 동쪽으로 움직여 가도록 유도한다.
소수민족의 독립심이 서서히 사그러져 간다고 어른들은 걱정한다.
그렇게 변해 가도록 중국 정부는 꾀하고 있는것 같다.
중국은 80년대에 티벳, 몽골, 위그르등 소수민족을 흡수하기 위하여 서북공정과
서남공정으로 역사를 왜곡시켜왔고 그 결과로 그들을 다스리고 있다.
막고굴
이 메마른 사막에 비가 내린다. 지나가는 비 같다.
먹구름 속으로 해무리가 선명히 보인다.
내린비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다.
줄지어 달리는 트럭들 행열속으로 비의 흔적이 묻혀 사라진다.
먼 지평선을 향하여 현대 소나타 한대가 우리들 앞으로 추월하여 달리니 모두들
고향 가마귀 본듯 환호 한다.
갖고간 간이 음식으로 점심을 떼우고 오후 4시쯤 돈황의 막고굴(莫高窟)에 도착한다.
막고굴
명사산 동쪽 모래바위틈에 깍아만든 동굴들이다.(현재 확인된 동굴은 474개)
아직도 동굴들을 찾아 개발하고 있다.
입장료가 100元이고 한국어 통역을 사용하면 120元 이란다.
물가 대비해 보면 한국돈 10만원이 넘는 입장료다.
모두들 미리 공부하고 자료를 검색했기에 아까워서라도 들어간다.
그러나 카메라를 갖고 들어가지 못하여 아쉽게도 사진이 없다.
사주 시장 기념품 좌판
그러나 들어가서는 모두들 분노를 한가득 안고 막고굴의 천장만을 응시하고 돌아나온다.
그 많았던 유물과 장경, 서책들이 1907년 미국의 스타인을 선두로 해서 프랑스의 펠리오,
일본의 오오타니, 러시아의 올텐부르그 등이 모두를 훔쳐갔다고 적어놓았으니...
실제로 그들이 촛불 켜놓고 산더미 같은 고문서들을 분류하는 모습의 사진들이 걸려있다.
특히나 자료조사에 몰두하고 있는 펠리오의 옆모습에서 두발은 빗지 못해서 흐트러져
있고, 귀밑의 수염은 더부룩이 돋아나 있다.
오직 자료를 골똘히 바라보는 그의 모습만이 있을 뿐이다.
신라의 혜초가 저술한 "왕오천축국전"도 펠리오가 수습한 돈황문서 중 하나로 발견된 것이다.
손님을 기다리는 노천바(?)
이러한 많은 유물들은 고고학자들의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는 지적 야심 덕분이었고,
막고굴을 지키고 있던 왕도사의 천박한 물질적 욕심이 교묘하게 절충되어서 비로서
가능했던 역사적 중대 사건이었다.
텅빈 동굴속을 플랫시로 밝게 비춰 보지만 약탈자들이 얼마나 알뜰히 쓸어갔는지 말끔하다.
그들은 약탈자인 동시에 오늘날 돈황학의 수준을 세계적으로 올려놓은 기초를 닦은 사람들이다.
돈황학은 동아시아 영역이 아니라 전세계적 차원의 학문과 예술로 자리하고 있다.
명사산
돈황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전문가들에게 물려주고 우리들을 기다리는 야시장으로 간다.
사주(沙州)는 돈황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사주 야시장이 있다.
그곳에 들러 좌판에 놓인 기념품들을 구경하고, 가지런히 차려진 술상 앞에 묻지도 않고
나비가 꽃에 앉듯이 자연스레 앉는다.
예쁘게 차려입은 아가씨들이 어서 오라하며 손짓하는 곳으로....
낮동안 점심 굶고 달려온 사막을 원망이라도 하듯이 찬 맥주를 벌컥벌컥 마셔댄다.
언듯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을 느낀다.
역시 돈황의 밤은 살랑 불어대는 모래바람이 있어 좋다.
또 이렇게 하루가 넘어가는구나....
관광객을 기다리는 낙타
7월 28일, 늦잠을 자고 일어나 돈황고성을 구경간다.
영화촬영을 위하여 일본 영화사에서 송대의 성곽을 고증하여 셋트장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돈황고성의 입구 문루에 올라서서 아득한 사막과 명사산을 넋놓고 바라본다.
한낮 땡볕을 맞으며 명사산(鳴沙山)으로 간다.
몇개의 모래 봉우리가 한낮의 태양을 받아 이글거리고 등성이의 부드러운 곡선이 우아한
자태로 흘러내리고 있다.
그 모래등성이를 향해 몇몇 관광객들이 올라가는 행렬을 보니 개미떼 처럼 보인다.
명사산 아래에 월아천(月牙泉)이라는 오아시스가 있다.
곤륜산맥의 눈녹은 물이 지하로 스며 들었다가 사막의 한가운데로 솟구치는 곳이라 한다.
호수의 모습이 마치 초승달 같다 하여 월아천이라 한단다.
한겨울에는 이 월아천이 꽁꽁 얼어 붙는다고 한다.
월아찬 바로 윗쪽에 신선이 사는곳이라 하여 지어진 도교의 사원이 하나 있는데 부연의
끝이 한껏 휘어져 치솟아 올라갔다.
경사진 명사산 모래언덕위에서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관광객도 있다.
오후에 돈황 박물관을 둘러보고, 버스로 두어시간 달려 돈황역에 도착한다.
저녁 7시 40분 기차로 신강성 위그르 자치구 투르판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