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비경을 찾어 감숙성, 청해성을 다녀온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다.
7월말에 베트남으로 수출할 기계를 하청공장에 의뢰해 놓고, 자재들을 완전히 수배해 놓고 열흘을 계획하고 7월10일 떠났다.
그리고 돌아와 밀린 숙제 하듯이 마무리 지어 어제 컨테이너에 넣어 베트남 하이퐁으로 보냈다.
그리고 실려간 기계를 조립, 시운전 그리고 훈련을 시켜주기위해 8월12일 하노이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오늘 부터 나흘간 휴가다. 트랙킹 떠나기 전 부터 바뻤는데 다녀오고도 바뻤다.
한달여 만에 포스팅 할려니 찾아주셨던 블로거님들 한테 무지 미안하다.
오랜만에 트랙킹을 떠나면서 10년전에 다녀온 실크로드 천산남로쪽이 생각났다.
그때도 이맘때 였는데 그곳 트루판에서 먹었던 맛 있는 과일들을 생각하니 침이 저절로 흘러내린다.
이번에도 그 맛 있는 실크로드의 과일들을 실컨 먹어 볼려고 다짐해 본다.
황하석림을 보기위해 하룻밤을 묵었던 금창의 마을길이다.
말, 수레, 경운기들이 교통수단이다.
살구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마음데로 따 먹어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양가죽 땟목을 타고 황하석림 입구로 간다.
황하의 물결이 상류라 그런지 유속이 빠르고 굽이치는 소용돌이도 무섭게 느껴졌다.
사공과 관광객 3사람 모두 4명이 타고간다. 모두 등을 맞대고 타야 밸런스를 맞출수 있다.
감숙성과 청해성은 우리나라 기후와는 좀 다르게 봄이 한창인것 같다.
난주를 거쳐 금창의 황하석림에 도착하니 살구가 한창 익어가고 있다.
숙소 앞마당에 열려있는 살구를 마구 따먹어도,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며 따온 익은 살구도 모두 공짜다.
숙소 뒤편으로 황하가 힘차게 흐르고 있다.
상류라 그런지 유속이 빠르고 빠져들면 굽이치는 물도리 속으로 금방 휘말릴것 같다.
금창에서 하룻밤을 묵고, 황하석림을 찾아나섰다.
선착장에 TV에서 많이 봤던 양가죽땟목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3인 1조가 되어 노젓는 사공과 넷이서 양갑죽 땟목을 타고 황하석림이 있는 곳 까지 내려간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굽이치는 황하의 물살이 금방이라도 이 엉성한 땟목을 집어삼킬것 같아 겁이 났다.
이곳에는 큰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사진속의 나무는 영화를 찍을때 놓아둔 죽은 나무다.
이곳에서 영화가 자주 촬영된다고 한다.
한국영화도 몇편 이곳에서 찍었다고 한다.
황하석림은 240만년전, 지각변동으로 융기된 퇴적암층이 비바람에 씻기고 풍화되어 지금의 거대한 흙기둥숲을 만들었다.
이곳을 황하석림이라고 하는데 이곳 영화촬영지로서도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마부 아줌마가 무언가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알아들을수 없지만 자세히 보니 돌기둥 벽면에 음각된듯한 흔적들은 암각호 또는 상형문자 같기도 하고여 몇컷 담아왔다.
오랜세월에 비바람과 풍화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 황하석림속을 찾아다니는 인간의 몰골이 한없이 작아보였다.
다음날 7/12, 내 몽골의 바단지린 사막으로 1박2일의 여정이 시작된다.
감숙성을 지날쯤 사막같은 지대가 이어진다. 내몽골이다. 고압선로가 내몽골로 향해 튼튼하게 달린다. 그리고 몇몇 지역은 풍력발전기의 타워가
집단을 이루고 서 있다. 많은 물자를 실은 트럭들이 서부를 향해 달리고 있다.
등샤오핑이 개방정책으로 중국이 발전하기 시작하고 부터 다민족국가속에서 소수민족들의 불만표출이 자주 일어나게되고 소수민족에게 유념하기 시작했다.
특히 소련이 해체된후 중국은 소수민족운동에 대비하여 "중국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서 "국민적 통합과 영토적 통합" 을 완결시켜야 하는 절박감을
느끼게 되고, 소수민족의 불만을 차단하기 위해 서북대공정이나 서부발전을 위해 서부대개발 정책을 쓰고 있다.
바단지린 사막 입구에 염호에서 소금을 채취하여 가공하는 공장이 망해서 폐허가 된 적막한 마을을 지나간다.
한마을을 관리하던 . 관공서는 물론이고 학교와 주택들이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찾아볼수가 없이 적막하다.
아유치에 도착하여 관리소 입구에서 4명이 한조가 되어 4X4 짚차를 타고 롤러코스터 같은 길을 마구 달린다.
사막길은 처음 부터 우리를 정신없이 만들었다. 차멀미 하는 사람은 처음 부터 힘들어 보였다. 1박 2일의 바단지린 사막 트랙킹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얼마가지 않아 징기스칸의 흉상을 설치해둔 오아시스 앞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며 앞으로 달려가야 할 험난한 사막길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사막입구에 호텔이 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떠난다.
이곳에서 일박하고 당일치기로 바단지린 사막 트랙킹을 다녀오는 팀들도 많다고 한다.
첫 오아시스 호수 앞에 머물러 휴식을 취하는 동안 사람들이 모래 언덕을 올라가고 있다.
바단지린이라고 한문으로 쓰여있다.
난 사막 트랙킹을 여러번 경험해 봤다.
12년전에 몽골 고비사막을 친구 세사람이 봉고를 전세내어 7일간을 돌아다녔다.
민가 게르에 자며 지평선에 불꽃이 타는듯한 여명을 보고 전율을 느끼며 찬란한 일출도 보았고,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맬때도 마지막 불을 토하듯
이글거리는 지는해를 바라보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던 기억이 새롭다.
아프리카 나미비아 사막, 칼같은 모래바람 그리고 일출을 보기위해 새벽 같이 일어나 DUNE45를 올라갔던 기억도 잊을수 없는 추억이다.
이집트 시와사막, 어린왕자에 나오는 시와사막을 4X4짚차를 타고 한량없이 달렸던 추억, 이런 추억들은 바단지린 사막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바단지린 사막을 짚차로 달리는것은 너무나 야성적이고, 모험이 가득한 오프로드 트랙킹이다.
모래 언덕을 오르는가 싶으면, 금방 또 45도 급경사를 겁없이 내려 꽂는다. 도무지 예측을 하지 못할정도다.
그래도 멀미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20여분을 달리다 보면 오아시스도 나오고, 또 모래언덕위에서 쉬어 가기도 한다.
이때 우리들은 언제 그랬느냐는듯이 모래언덕위에 눕기도 하고 환호를 지르며 온갖 포즈를 취하며 사진 모델이 되기를 즐겨 한다.
나이가 들어도 그래도 어린시절이 그리운가 보다. 아니 마냥 젊어지고 싶은가 보다. 물론이지, 늙는게 좋을 사람 있으면 나와봐라...
우리나라에서는 서낭당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여행을 떠나며 이곳을 세바퀴 돌고가면 행운이 온다고 한다.
운전기사들은 모두 이곳을 세바퀴돌고 간다.
모레언덕에 7대의 4x4 짚이 모였다.
45도가 넘어 보이는 급경사 아래로 오아시스 호수가 내려다 보인다.
이곳에서 몇사람은 비료 비닐포대를 깔고 눈설매 타듯이 타고 내려왔다.
청해자 오아시스 호수를 내려다 보는 모래언덕에 앉아 오늘 묵을 몽골식 게르를 내려다 보고 있다.
바단지린 사막에서 가장 높다는 에베레스비루트(1167m)봉이 위로 올려다 보인다.
왕복 3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
청해자 오아시스 호수옆에 몽골족 유목민가에서 하룻밤을 묵을 게르에 도착했다.
가까운 라마교 절이 있다하여 찾아가봤다. 그러나 문을 잠궈놓고 아무도 없드라.
저녁반찬으로 양고기 수육, 갈비 수육이 나왔다. 몽골 고비사막 트랙킹때 민가에 주문하여 양을 한마리 잡아 흐르헉으로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는 엄청 헐했다. 양 한마리 15,000원, 잡아 주는데 10,000원이었다. 4년후 실크로드 천산남로를 트랙킹 할때 한마리 65,000원을 준 기억이 있다.
일몰을 구경하고 게르에 모여 가이드가 준비해온 기타를 치며 여흥의 시간을 마련했는데 정말 놀랍게도 박사장님이 기타치는 솜씨가 프로에 가깝다. 아니 프로다.
돌아가며 노래를 하는데 신청하는 곡마다 키를 마춰서 반주를 해 주신다. 중국과 무역을 하신다는 박사장님은 중학교때 부터 지금 까지 기타를 즐겨 치신다고 한다.
다음날 묘해자 언덕에서 아침 일출을 보고 어제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역시 사막의 언덕길을 롤러코스트 타듯이 아래위, 좌우로 잘도 미끄러져 달린다. 물론 돌아오는길도 20여분 달리고 쉬고하였다.
어느 언덕길에서 쉬고 있는데 멀리서 낙타떼가 달려온다. 모두들 아침 햇살에 음영진 사막경치를 구경하다가 달려오는 낙타에 매료되었다.
메르스에 혼이난 우리들이지만 역시 사막에서는 낙타가 제격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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