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큰 규모를 자랑했던 오오사카 인텍스 전시장, 그러나 설렁하다.
어제 이틀간 일본 오오사카 국제봉제기계전시회를 다녀왔다.
한마디로 말해서 실망과 사기 당했다는 기분이다.
난 1973년 부터 일본엘 다녔는데 그것도 전시회 일정이 많었고 기술 습득을 위해서다..
그런데 9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일본의 전시회산업은 세계에서 1.2위를 할 정도였다.
도쿄, 오오사카에서 매년 열리는 전시회는 유럽과 버금 갈 정도로 규모가 컸다.
내가 관심을 갖고 다녔던 전시회는 국제섬유기계전시회, 국제봉제기계전시회,석재기계전시회등이다.
유럽에서 4년에 한번씩 열리는 세계섬유기계전시회(ITMA)와 괼른에서 열리는 세계봉제기계전시회는 4년에 한번씩
다녔고, 또 거기서 많은 기술적인 자료를 얻었고 또 새로운 도약을 위한 자극도 많이 받었다.
유럽의 전시회가 열린 2년후 일본에서 아시아권을 대상으로 한 섬유기계전시화와 봉제기계전시회가 열린다.
이때도 물론 유럽의 기계들이 많이 참가하나 일본의 기계들이 전 전시관을 찾이할 정도다.
그때는 중국 기계가 전시된것은 흔적도 없을때였다.
겨우 한국의 섬유기계들이 조금씩 한구석을 찾이하고 출품할 정도였으니 일본의 위세가 대단했다.
원단을 자동으로 깔아놓고, 컴퓨터에 의해서 자동으로 제단하는 기계
모델을 3D로 스켄하여 재단하는 시스템을 설명하는 부스-사람들이 모여있다. 그 시스템으로 만든 옷들...
또 1980,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의 섬유산업이 호황을 누렸을때니 많은 사람들이 참관했다.
그리고 상담도했고, 또 많은 섬유기계들이 수입되어 섬유산업의 호황을 이어갔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의 섬유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고 또 급속도로 섬유업체들이 줄어드니
일본의 섬유기계산업도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2000년데에 들와서는 지금의 한국과 같이 섬유기계 특히 직기산업은 완전히 문을 닫었다.
일부 섬유기계산업만이 명맥을 유지하며 일본국내 수요를 이어갈 뿐이었다.
물론 한국도 섬유기계산업이 사양화되고, 중국으로 이동했으나 지금과 같이 명맥만을 유지할 정도로 변해갔다.
그러나 1990년 이후 중국은 급속도로 발전하게되고, 특히 섬유기계부분은 유럽, 일본, 한국의 기계들을 수입하고
한쪽에서는 그 기계들을 복사하여 중국섬유기계로 날로날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북경과 상해 두곳에서 매년 전시회를 개최하여 기계는 물론이고 부품에 이르기까지 전시회의 규모가 커나간다.
지금 상해전시장은 아마 세계에서 가장 큰 전시장 규모인것 같다.
지난 6월에 열렸던 섬유기계전시회는 내 블로그에서 소개했던데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큰 전시회라 할수있다.
봉제공장 작업장에 사용하는 행거시스템
그런데 이번 오오사카 국제봉제기계전시회는 10여년이 지나 오랫만에 일본에서 열렸다.
그런데 한마디로 말해서 너무 빈약하고 출품된 기계들도 특성이 없는 쫄아든 전시회라 할수있다.
내용이 이러하니 참관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이없어 두쨋날인데도 썰렁하다.
그 반면 중국의 봉제기계전시회는 그 규모면에서도 엄청나게 크다.
내 블로그에서 몇번 소개했지만 전시장 규모나 출품하는 각 회사마다 찾이하는 부스의 면적만해도 일본과 비교도 않된다.
물론 중국전역에서 찾아오는 참관자들의 입장객수는 전시회가 끝날때 까지 이어진다.
난 옛날의 일본전시회를 생각하고 이틀은 참관할려고 갔으나 두시간 정도 돌아보고 돌아서 나왔다.
볼거리가 없다. 출품된 기계들이 빈약하다 못해 불상한 마음이 들 정도다.
물론 기계 하나하나 뜯어살펴보면 많이 발전되고 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볼거리가 없다.
특히 나 같이 자료를 수집하고 정보를 얻을려고 간 사람들은 더 실망감이 클것이다.
봉제공장에서 사용하는 각종 비품들...재단기, 레이저 빔, 모터, 등등....
이제 돌아왔으니 파키스탄으로 보낼 기계를 마지막 치장하고 배에 실어야겠다.
또 신용장이 왔다는 은행에서 전화를 받으니 신명이 난다.
주문받은 기계 제작을 위해 얼른 준비해 놓고, 이집트로 여행 갈 준비를 해야겠다.
이집트!
요르단 페트라 그리고 시와사막....
생각만해도 절로 신명이 난다.
다두 자수기
20개의 바늘로 한번에 작업하는 멀티니들 봉제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