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남미 5개국

잉카문명의 꽃 마추픽추-남미 5개국 배낭여행기

master 42 2009. 4. 17.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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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코역을 출발한(07:10) 협궤기관차는 지그재그로 한시간여를 몸부림치며 올라가고, 
그리고 또 내려가더니 평원과 협곡을 4시간여를 달려 우루밤바 계곡 깊숙한 아구아스깔리엔테스
(Aguas Calientes)역에 도착한다.
여기서 미니버스로 갈아타고 30여분을 꼬불꼬불한 길을 지그재그로 내리막길 없이 올라만 간다. 
뾰죽한 산들이 좌우로 나타날때 마다 감탄하고, 마추픽추는 우리들에게 더욱 신비감을 준다.
차가 더 올라가지 못하는 지점에 이르면 거기가 마추픽추 목적지다.
 
 
왼쪽 아래로 우루밤바강이 흐르고 마추픽추(아구아스 깔리엔테스)역이 보인다.. 
꼬불꼬불한길로 미니버스를 타고 올라온다.
걸어서 올라오면 2시간여가 걸린다고 한다.
 
 
 

마추픽추가 바로 눈아래로 내려다 보인다.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라고 한다.

사진으로서만 보아오면서 오랜동안 내 머리속에 신비감으로 쌓여있던곳이다.

눈아래로 내려다 보며 실체를 확인하는 동안 내내 감탄만 나올뿐이다.

어쩌면 어느 화가가 상상의 나래를 펴고 그려놓은것 같은 동화속의 그림같기도 하고, 환상적이기도 하다.

높디높은 산봉우리 위에 돌로 만들어 놓은 마을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

새로운 세계가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들, 모두가 나에게 감탄의 대상으로 닥아온다.
건너편 높은 산위에 보이는 와이나픽추는 당일 코스로는 갈수 없는 곳이다.

 

 

 

 

구름이 오르락 거리는 저 쀼죽한 산속, 밀림속에 아직도 마추픽추 같은 사라진 도시가 몇개는 더 있을거라고 한다.

그래서 탐험가들은 오늘도 그 사라진 도시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잉카제국은 아메리카 대륙을 통틀어서 가장 큰 나라였으며 이들은 12세기경 티티카카 호수에서 발원하여

인접한 쿠스코(Cuzco)에 수도를 세우고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이들의 전성기에는 오늘날의 콜롬비아 남부,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북부, 아르헨티나 일부 지역까지 세력을 펼쳤으며

2500만명의 국민이 있었다고 한다. 잉카는 스페인이 정복하기전 16세기초까지 비교적 짧은 기간동안 존재했었다.

잉카의 수도였던 쿠스코는 해발 3400m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은 산들이 주위를 감싸고 있는 계곡으로
세 개의 강줄기가 모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협궤 기차를 타고 지그재그로 고개를 넘어 쿠스코를 빠져 나온다.

쿠스코가 분지라 그런지 멀리로 안개가 자욱히 깔려있다.

 

 

4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중심구역의 큰 궁전에 귀족들이 살았으며 상하수도 시설이 완벽했다.

전성기에는 인구가 20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성기를 맞은 1532년, 파사로를 대장으로 하는 스페인의 군대가 잉카 제국 북부 해안에 상륙하였다.

스페인 사람들은 잉카의 황제를 초대하였다. 피사로는 잉카 황제에게 스페인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하였다.

황제가 이를 거절하자 그들은 기습 공격으로 황제를 사로잡았다.

결국 황제는 처형당하고 스페인 사람들은 잉카의 수도인 쿠스코까지 점령하였다.
그리고는 그의 이복 동생인 망코를 허수아비 황제로 세웠다.

 

 

 

 

1536년, 망코는 10만의 잉카인을 거느리고 안데스 산맥의 험준한 골짜기로 도망가 새로운 수도를 세웠다.

이곳이 잉카의 마지막 수도 빌카밤바이다.

그 후 망코의 아들 아마루가 새로운 황제가 되어 스페인 군대와 치열한 싸움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1572년 빌카밤바마저 스페인에 함락되고 황제는 쿠스코로 끌려가 처형되었다.

그리고는 스페인 군대는 잉카의 막대한 금을 약탈하였다.

잉카에는 금이 많다고 전해지는데 그들의 약탈에도 불구하고 많은 금은보화가 숨겨졌다고 알려져 있다.

스페인 군대가 쳐들어 온다는 정보를 접한 잉카의 귀족들은 극비리에 보물들을 숨겼다고 한다. 스

페인 군대는 그 보물을 찾으려고 각방으로 노력했으나 결국엔 찾지 못했다.
빌카밤바에서 살아남은 일부의 사람들은 또다시 다른 곳으로 도망가 새로운 도시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마추픽추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미국 예일대 교수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 1875-1956)이다.
안데스 산맥 깊은 곳에 잉카족의 숨겨진 요새가 있다는 소문에 탐험가 기질이 발동한 그는
여러 차례 그곳을 찾기 위한 시도를 했다.
1911년 또 다시 우루밤바 협곡을 향해 올라갔으나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빙엄 교수는
우연히 인디오를 만나 물을 얻어 마시던 중 산모퉁이 뒤에 숨어있는 잃어버린 도시에 대해 듣게 된다.

 

 

 

 

 



큰 기대 없이 긴가민가하며 산모퉁이를 돌아선 그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라진 옛 성벽 도시가 눈 앞에 우뚝 솟아올라 있었던 것이다.
숱한 탐험에 실패하고 절망 속에서 지친 발걸음을 옮기던 빙엄에게 그 때의 감격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공중 도시 마추픽추는 이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마추피추는 쿠스코에서112km 떨어진 곳에 해발 2300m 높이의 산봉우리에 만들어져 있다.
아마존 강의 원류인 우루밤바 강 위의 절벽에 세워져 있으며 아래에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아
그 존재를 알 수 없고 접근조차 어렵다.
총 면적은 40만km2이고 약 1만여명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산정과 가파르고 좁은 경사면에 들어서 있어 스페인 정복자들의 파괴의 손길이 닿지 않은
유일한 잉카 유적이다.
정확한 건설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2000년 전의 것으로 추측된다.
이 도시로 들어오는 길에는 통나무다리가 있는데 적군이 침입해 오면
이 통나무를 치워 길을 끊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옥수수, 감자들을 경작했다하니...

 

 


 
마추픽추에는 인디오들의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는 유적들이 상당히 많다.
태양신을 숭배한 잉카족은 제국 곳곳에 태양신전을 세웠는데 이곳 마추픽추에도
햇빛이 잘 비치는 곳에 어김없이 태양신전이 자리하고 있다.
하늘을 나르는 매과에 속하는 콘도르를 신성시하여 돌로 만든 콘도르도 있고,
왕족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궁전, 그리고 감옥, 집들이 있다.
이밖에 돌로 된 "인티와타나"란 해시계, 창문이 3개인 돌벽, 아직도 사용 가능한 우물터,
농작물을 재배했던 계단식 밭과 관개수로 등도 생생하게 보존돼 방문객을 맞는다.
잉카족은 당시 계단식 밭에서 옥수수, 감자, 과일 등을 재배했으며 옥수수와 감자를 건조시킨
추뇨를 주식으로 삼았다.
아직도 다음해에 경작할 곡식의 씨를 보관했다던 종자 보관소 건물이 남아있다.

 

 

 

종자 보관 저장소

 

"인티와타나"라는 해시계-잉카는 태양력을 사용했다 한다. 손바닥을 부벼 이곳에 가까이 하면 기를 받는다고 한다.

 



마추픽추의 건물들은 마치 두부를 칼로 썬 듯한 네모난 돌들로 견고하게 지어졌다.
또 높은 지대에 살다보니 식수를 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는데, 잉카족은 지하수가 나오는 곳을 찾아
돌로 된 고랑을 길게 연결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흐르는 물을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돌을 잘 다루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신무기도 없고 이렇다할 연장도 없었건만 잉카인들의 돌 다루는 솜씨만큼은 신기에 가까웠던 듯하다.

 

 

 


신전

 

 

 

 

 

 

 


마추픽추를 찾은 여행객들은 공통적으로 수 만 명의 정예군대를 가진 잉카제국이
어떻게 피사로가 이끄는 스페인 군대 168명에게 그처럼 허무하게 멸망해 버렸느냐는 의문을 갖는다.
잉카제국 멸망을 주도한 피사로는 같은 스페인 사람인 코르테스가 멕시코의 아즈텍왕국을 무너뜨리고
막대한 황금을 손에 넣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파나마 남쪽의 또 다른 황금제국을 찾아
탐험대를 조직해 잉카제국 북단에 도착했다.

 

 

 

 


 

 


당시 잉카제국은 왕의 자리를 놓고 치열한 권력투쟁 중이었고, 각지에서 괴질이 돌아 숱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등 매우 혼란스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런 상황을 간파한 피사로는 1532년 페루의 카하마르카에서 아타왈파 황제를 알현하던 중 기습공격을 한 것이다.
천지를 뒤흔드는 대포 소리와 총 같은 신무기에 크게 놀란 잉카족은 제대로 된 공격 한번 못 하고
어이없이 무너져 버렸다.
이때 스페인 군인들의 무차별 공격에 살육당한 잉카족 전사들이 7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마추픽추는 워낙 경사가 심한 곳에 자리해 적들의 공격이 불가능한 장소다.
과거 이곳에 살던 잉카족이 누구인지 궁금했던 학자들은 동굴에서 발굴된 174구의 해골을 분석했는데,
그 중 150구가 여성이었다.
빙엄 교수는 여러 정황을 종합해 과거 이곳에는 잉카제국의 아름다운 처녀들이 살았던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잉카제국의 통치가 절정이었을 때 전국에서 소녀들을 선발해 왕을 섬기고 종교의식을 돕도록
훈련시키는 학교가 곳곳에 있었다.
스페인 군대가 쳐들어오자 지도층은 이들 소녀들을 산중 비밀도시로 피난시켜 침략자를 몰아내 달라는 기도와
하늘에 대한 예배를 드리게 했는데, 마추픽추가 바로 그러한 곳이었다는 것이다.

 

 

 

한가히 풀을 뜯고있는 야마(라마)

그 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자들은 나이를 먹어 죽어갔고, 수비를 맡았던 남자들도
죽거나 흩어져 버렸으며 결국 아무도 살지 않게 된 곳을 정글이 덮치자
마추픽추는 사라진 도시가 되어 버렸다는 추측이다.
황금의 제국이란 화려한 명성을 뒤로 한 채, 이 신비의 도시는 그 이름‘마추픽추(나이 든 봉우리)’처럼
조용히 세월을 보내며 관광객을 맞고 있다.

지금도 마추픽추와 같은 사라진 공중도시가 밀림 어디엔가는 몇곳 더 있을거라며 많은 호기심 많은 탐험가들은
흥미를 갖고 언제가는 나타날거라고 믿고 있다.
마추픽추에 살던 잉카인은 왜 사라졌는지, 이 곳이 예전에 잉카의 수도였는지 알 수는 없다.
오직 마추픽추에 살던 그들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마추픽추를 내려와 늦게 먹은 점심 스테이크-참 맛있드라...내게는 맛없는 음식은 없드라...

 

쿠스코에서 머물렀던 호스텔-잉카스러운 옛날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