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서부 트랙킹

미서부 그랜드 트랙킹-그랜드케년

master 42 2016. 7. 29. 23:40

  


    미서부 그랜드 서클 종주 트레킹. 11일째, 그랜드 캐년 종주날이다.

   그 장엄한 자연의 일부가 되어. 헤아릴수 없는 영겁의 세월동안 돌출하고 내려앉고 깎이고

   마모되며 만들어진 저 거대한 협곡, 그랜드 캐년.

   인류의 역사를 초월하여 선사시대로부터 증여받은 선물. 살아있는 지구의 삶이 그대로 표출되어 있는 곳.

   펼쳐진 장대한 풍광에 가슴 울컥 눈물마저 치미는 곳,

   우리 인간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미물인지 그 아름다움과 장엄함에 눈을 뜨는 곳.

   세계 3대 협곡의 우선에 두는 곳.


   이런 숱한 접두어를 달고 있는 죽기 전에 꼭 한번은 방문해보아야 한다는 10대 비경에 항상 상위에 랭크되는 그랜드 캐년은

   애리조나 주 북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특이한 지질학적, 생태학적 특징과 대단한 자연미 덕택에 국립공원관리청’이 공식

   설립된 지  3년 후인 1919년에 국립공원으로 공식 지정되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이 그랜드 협곡을 보기위해 연간 천만 명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번 원정산행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그랜드 캐년을 종주하는 날입니다.

   오늘의 종주를 위해 유서깊고 고색창연한 브라이트 엔젤 로지에 숙소를 정하고

   푹 쉬며 캐년의 숨결을 느끼리라 했지만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마감하자는 의견들 때문에

   새벽 3시부터 설치느라 짧은 인연만 맺었었습니다.

   대신 전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를 보인다는 그랜드 캐년의 신비롭고도 황홀한 풍경을 보았으니

   맞 갚음을 한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뜨거웠던 하루를 태우며 서산으로 비끼는 태양은 지평선에 가까울수록 선홍에서 자주로 자주에서 보라로 변하면서

  깊고도 깊은 캐년의 협곡을 물들이며 저물어 갔습니다.


   어두워져 이제는 더 이상 사물의 분간이 어려워도 비록 앵글속의 인물은 그저 실루엣으로 보여도

   좀처럼 떠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충격 같은 풍광이 오래토록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아 더욱 잠 못 이루는 밤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네 시 경에 오늘 나의 75회 생일(6/21 하지)이라해서 대장님이 마련한 미역국에 한 그릇 씩 조찬을 들고

   도시락과 간식들을 챙겨서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 헤드에 당도하니 여명이 인색하게 들고 새벽안개를 걷어내고 있었습니다.

   이상 기온. 지구의 온난화 때문에 평소보다 캐년 림의 기온이 섭씨 10도나 올랐다 하니 모두들 어제 밤더위에 잠을 설쳤다는

   푸념을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콜로라도 강에 이르면 또 다시 섭씨 10도 이상이 올라간다 하니 더위와 물과의 전쟁에 가슴이 막막합니다.


   대장은 원래 이런 더위를 예상해 사우스 카이밥 트레일로 하산해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로 올라오기로 했었으나

   종주에 자신이 없는 몇 분이 이르게 출발하자는 의견 때문에 일반 차량의 통행이 불가하고 오직 셔틀버스로만 진입이 가능한

   사우스 카이밥 출발을 포기하고 반대로 조정했습니다.


   기나긴 여정, 어느 정도의 고통이 따를지 모를 장대한 산행을 위해 서두르는 손길이 바쁘고 흥분처럼 설레이는 마음들이 가득합니다.

   출발점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크게 파이팅을 외치고 발길을 돌리는데 발아래 안개 속에서 서서히 나타나는 캐년의 속살이 보이는

   풍경이 신비롭게 펼쳐집니다.

   발걸음 가볍게 강을 향해 내려가는데 저만치서 붉은 바위의 아치가 첫 관문처럼 나타나고 우리들의 종주에 대한 자신감을

   스캔이라도 하는 것 같아 상기된 표정으로 그 터널을 통과했습니다.







그랜드케년 브라이트 엔젤 코스에서 마지막 샘이 있는 인디언 가든입니다.

모두들 이곳에서 갖고온 여러개의 물병에 가득체웁니다.

물의 무게만도 5 kg정도 됩니다. 

산악안전을 위해 RANGER가 주둔해 있는곳입니다. 

돌아오던길에 우린 이 분들 한테서 많은 도움을 받었습니다.

이 RANGER들은 항상 권총과 수갑을 갖고 다닙니다.







   캐년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넓은 평원에 아스라이 그어져 있는 길. 그 길이 이 브라이트 엔젤길의 연결인데

   인디언 가든 포인트에서 출발해서 평원의 끝인 플래토우 포인트까지 3km 구간을 빼면 10km 정도의 거리인데 고도가 1500미터라면

   그 경사가 얼마나 가파른지 짐작이 충분히 될 것입니다.

   그 길을 내려가 다시 오를라치면 얼마나 힘든 고행의 수행길이겠습니까?

   모골이 송연해지는 순간입니다만 내가 택한 길, 내가 정한 나의 인생길, 멋있게 살고 신나게 종주하려 합니다.


   350미터를 내려간 2마일쯤에 레스트 하우스가 있고 300미터를 더 내려간 4마일 지점에 벼랑 위 그림처럼 지어진 휴게소가 있고

   600미터를 더 내려가면 6마일 지점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물이 풍성하게 솟아오르는 인디언 가든이란 쉼터가 있습니다.

   B팀들은 적어도 이곳까지는 모두 내려와 다시 올라야 할 오늘의 미션임을 상기시키고 독려를 하는데

   햇살은 산란없이 맑은 산 공기를 투과하여 내리쬡니다.


   어느새 안개는 말끔하게 걷혀지고 발아래 펼쳐지는 장대한 협곡의 풍광에 아찔하게 현기증이 일어납니다.

   멀리 두고서 먼발치에서만 바라보던 곳. 오늘처럼 지근거리에서 느껴보는 대 자연에 대한 감흥은 유달리 흥분으로 상기됩니다.

   이 길, 이 축복의 길을 걷게 해준 은총을 이 세상 모든 것들에게 감사하며 즐겁게 그 길에 흡수되어 갑니다.







   내려가는 산행 길은 언제나 경쾌합니다.

   동무들과 첫 소풍을 나온 초등생처럼 몸이 저절로 구름 위를 걷고 발길은 까치걸음이 되어 춤을 춥니다.

   신나게 내려간 만큼 고통 속에서 등산해야 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이 순간만큼은 잠시 잊고 하산의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얼마나 여유로운 도보인지 모릅니다.

   천하제일의 풍경을 두고 그냥 갈수 없다며 좋은 전망이 펼쳐지는 곳에서는 시키지 않아도 포즈들을 취합니다.


    비록 집으로 돌아가 찾아 든 사진을 보며 세월의 허망함으로 긴 시름의 한숨을 내품어 내더라도 찍히는 지금은 모델이 되고 

    새색시가 됩니다. 성급한 이들은 어느새 저만치 내려가고 있음이 보이는데 은근한 경쟁심이 그 길을 재촉하기도 하겠지요.

   바람타고 내리는 길, 얼마나 걸었을까 뒤돌아보니 믿기지 않을 수려한 캐년의 풍광이 안계에 들어오고 우리가 떠나온 롯지가

   벼랑위에 나열되어 한 폭의 농익은 수묵화를 그려냅니다.









   이렇게 산은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거대한 암벽들이 직각으로 서서 도열해 있고 이어지는 돌산은 무슨 조각품처럼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서 구름과 다정한 대화를 나누고

   롯지 위에 버티고 선 하늘은 짐짓 근엄하게 온 누리를 인자하게 덮어 감싸고 있습니다.


   허공을 걸어서 오지 아니한 산객 신발을 벗을 수 없다는 중간 기착점인 인디언 가든에 이르렀습니다.

   어디서 발원하는 물인지는 몰라도 풍요로운 물이 콸콸 넘치고 있습니다.

   대장님은 오늘은 물과 더위와의 싸움임을 경각시키고 무제한의 물을 담아 준비하라 이릅니다.

   그리고 계속 전진하여 수원지가 끝나갈 지점 브런치를 먹는데 이어지는 등산길에 배가 부르면 불편도 할 것이니

   시냇물 옆에 옹기종기 모여 발들을 담그고 앉아 이른 오찬을 나눕니다.


   걸인의 찬, 황후의 식탁. 돈 주고도 살수 없는 자연의 인테리어 속에서 신이 되고 도인이 되어 만찬을 즐깁니다.

   세속에서는 보잘 것 없는 주전부리가 산에서는 꿀맛입니다.

   그리도 흔한 것들이 여기서는 이렇게 소중하니 그저 인생에서 함부로 대할 것은 없음을 배웁니다.

   잊고 있던 것을 깨닫게 하고 감겨 있던 눈을 뜨이게 하는 산행. 그래서 산을 오르내리는 우리의 행적은 의미가 깊습니다.











   그랜드 캐년의 종주는 물과의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물이 소중한 요소입니다.

   매년 270 여명의 하이커들이 무리한 도전으로 죽음에 이를 치명적인 사고를 낸다고 대장님은 말하는데 

   올 때 마다 레인저가 겁을 주며 웬만하면 여기에서 돌아가라고 충고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모두 전의를 불사르며 종주할 것을 다짐합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광활한 푸른 평야가 더 넓게 펼쳐져 있고 가는 실타래처럼 풀려져 있던 플래토우 트레일.

   그 의혹의 길을 확인하며 오늘 우리는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 장엄하고 광대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는 순간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무덤덤한 길로만 보이던 이곳에는 허구 많은 꽃들이 앞을 다투어 피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선인장들이 높은 열기 속에서 화려한 원색의 꽃을 피워내고 오렌지색의 초롱꽃, 노오란 색의 산민들레가 만발하여

   이 길은 그야말로 꽃으로 수를 놓았습니다.


   들꽃의 환대를 받으며 바람이 전해주는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걷는 그 길은 천상의 길이며 레드 카펫 보다 더 영광스럽습니다.

   포인트에 이르니 내려다보이는 콜로라도 강의 굽이침이 장쾌하게 펼쳐지는데 한줄기 가녀린 강줄기로만 보였었는데 지척에 다가서니

   굉음을 우렁차게 내며 도도히 흐르는 대단한 강이었습니다.

   언제나 급류로 흐르는 물길은 흙탕물 같아 보이는데 세속의 쓰레기를 실어다 나를 것처럼 거대한 신의 모습처럼 다가와 흩어집니다.












   가파른 길을 다시 내려서 1.6마일을 내려가면 최저점인 강바닥에 이릅니다.

   여기서 다시 부드러운 평지의 리버 트레일이 시작되고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할 것 같은 노스림 캐밥 트레일이 시작되는 건너편이

   하시라도 바람에 끊길 것 같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팬텀 렌치라는 고즈넉한 산장이 준설되어 있고 하루씩 머물다 가는 하이커들이 진을 치는 브라이트 엔젤 캠프장이 숲속에 들쑥날쑥

   무질서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건조한 바람이 한 결씩 밀려오는 둔덕에 앉아 피안의 세상을 굽어보며 까마득히 멀어진 기억속의 출발점을 올려다봅니다.

   가야할 오르막길 보다 걸어온 내리막길을 생각하며 대견한 나르시시즘에 빠져들면서

   밀려오는 오수를 털어내고 사우스 카이밥 트레일로 등정을 시작합니다.











   리버 트레일 3km를 묵묵히 걸어 사우스 카이밥 트레일을 올라가다 하늘 한 점 가리지 않은 구름 덕택에 고스란히 정수리에 꽂히는 뜨거운 햇살.

   잠시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봅니다. 콜로라도 강변 유일한 숙소인 팬텀 랜치(Phantom Ranch)가 신기루 속의 오아시스처럼 흐늘거립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사냥을 위해 머물렀다 해서 루즈벨트 렌치라고도 불려 지는데 음식이나 음료를 구매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 숙소를 운영하기 위한 물품을 조달하기 위해 왕래하는 노새들의 무거운 발걸음이 지나가는데 애처롭도록 지쳐 보입니다.


   시선을 떼지 않고 따라가자니 구름다리를 건너갑니다.

   인디언의 땅, 바람의 땅에 준설된 저 구름다리. 1920년 경 인디언들의 손에 의해 철제로 제작된 삶의 다리.

   그러나 자연보호를 위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자연의 일부로 살아왔던 인디언들이 수천 년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보금자리를 내어주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음을 상기하면서 괜스레 씁쓸한 동병상련의 애처로움이 동정처럼 일어납니다.

   유장한 물은 그 파란만장한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고도 아무런 말도 없이 흘러만 가고 피의 역사를 보아온 산증인인 바람도 

   모든 것을 용서라도 하려는 듯 오늘 평화스런 협곡을 부드럽게 보듬어 주고 지나갑니다.








   KAIBAB 트레일. 그랜드 캐년의 심장부를 가로 지르는 카이밥은 우스갯소리로 우리 한인들은 개밥이라고 쉽게 부르는데

   이것은 인디언의 말로 ‘거꾸로 선 산’이라는 뜻이랍니다.

   거대한 대 협곡이 마치 산을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이라 부르게 된 인디언들의 소박한 표현력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원시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신비의 땅. 그리고 거대한 인디언의 땅.

   발길이 닿는 곳마다 거룩하고 신성한 거꾸로 서있는 산에 우리의 족적을 남기며 어쩌면 우리들의 조상일 것 같은

   그 인디언들이 걷던 이 길을 오늘은 우리가 문명을 앞세워 걷고 있습니다.


   강변은 항상 림보다 기온이 10여도 높아 오늘은 무척 무덥습니다.

   6월부터는 40도가 넘는 사막기후로 변해 의지 약한 트레커들을 시험에 들게도 합니다.

   여름이 일찍 온 이곳에 봄꽃은 어느새 다 져버리고 밤이슬을 먹고 자라는 사막성 선인장들이 제철을 만나 요염한 꽃을 피워냅니다.

   저 위 전망대에서 내려다 볼 때는 아무런 생명체조차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던 이 계곡에 풀이며 꽃이며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고

   수억 년 동안 강물이 깎아 만든 주변 절벽들이 황홀경을 선사합니다.





 브라이트엔젤 코스로 돌아가는길, 섭씨 44~45도의 햇살이 더무 뜨거워 모두들 콜로라도강으로 배낭만 벗은체 몸을 담금니다.

 만년설이 녹은 물이라 꽤나 차거워도 모두들 한동안 몸을 식힙니다.

 옷입은 그데로 바깥에서 5분정도만 있으면 옷은 금방 말라버립니다.



   거대 바위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을 들추는 작업. 내려온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가장 문명의 나라 미국 내에 존재하는 가장 원시적인 그랜드 캐년. 대자연의 신비와 웅장함이 살아 숨 쉬는 듯

   수 억 만년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독특한 지층을 이루고 있어 지금도 계속되는 침식 작용에 그랜드 캐년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변화합니다.


   12개의 바위 층을 가진 그랜드 캐년은 협곡마다 변화무쌍한 지구의 형성 과정이 차곡차곡 세월과 함께 쌓여 지질학의 교과서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방문객 90퍼센트 이상이 전망대에서 그냥 휘 둘러보고 갑니다만 우리들처럼 이렇게 그 신성한 인디언의 길을 따라 온 자만이

   이 신의 걸작품을 감상하고 품평할 기쁨을 누립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우스 카이밥 길을 점검하던 레인저를 만납니다.

   수원지라고는 하나 없는 이 길을 오르려는 우리들 일행을 보고 막아섰습니다.

   이렇게 치명적인 더위 속에서 어떻게 이 길을 등정하려 하느냐며 물은 얼마나 있느냐 확인을 합니다.










   나름 충분히 준비하고 마련하였다고 하였으나 이 열기에서는 물도 뜨거워져 아무런 소용이 없다며

   마침내는 지난 주말 5명의 산객들이 탈수와 열사병으로 죽어나갔다고 가지 못하게 합니다.

   책임자인 대장의 신상정보를 캐묻고 이대로 강행한다면 산정에서 체포령을 내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데

   대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의 명령에 복종하리라 답을 돌려줍니다.

   철수하고 되돌아가겠다고 약속을 하고 우리 일행들에게 알립니다.


   앞서간 선두그룹은 그대로 강행하자고 고집하지만 우리는 모두가 생명을 공유해야 할 아름다운 동행들.

   이미 체력과 더위에 지친 후미의 일행들이 아득히 가물거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같은 이상기온의 혹독한 더위와 갈증에는

   자칫 사고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니 돌아가는 길 더 길고 멀어도 그늘이 있고 물이 풍부한 브라이트 엔젤로 가는 것이 현명하리라 판단을 하고 

   최종 결정을 내립니다.

   생명을 걸고 만약에 라는 가정을 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위험에 처할 것이 자명한데

   아집과 허세를 부릴 상황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되돌아가는 길. 주 구세주를 잃고 돌아가는 희망없는 엠마오로 가는 길입니다.

   한낮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45도를 육박한다는 사막 기온이 길을 더욱 더 멀게 만들어버립니다.

   숨이 턱턱 막히고 턱밑에 까지 차오르는 그늘 하나 없는 길에 해는 중천에 바로 떠서 우리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저 그늘과 시원한 물을 쫓아가는 길. 드디어 강변길을 다 걷고 브라이트 엔젤 길로 연결이 되는 최저점에 다다랐습니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 모두 콜로라도 강으로 배낭만을 벗어던진 채 강물로 뛰어듭니다.

   이름 그대로 콜로라도 로키가 녹아서 흐르는 빙하수. 이내 치아가 떨릴 만큼 시리고 시립니다.

   그래도 그 불타오르는 듯한 태양에 달구어진 몸은 쉬이 식지를 않고 한참을 그러고 물속에 들어가 한웅큼씩 떠서 머리에 퍼붓고 나니 

   제정신이 돌아오는 듯합니다.








   이제 다시 이어지는 11km의 오르막 길.

   1500미터의 경사 길을 올라야하는 지난한 길입니다.

   인생도 호사다마라 했습니다. 좋은 면이 있다면 그 이면에 나쁜 것도 있는 법.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날이라 캐년의 풍광을 마음껏 볼 수 있어 좋았지만 강렬한 햇볕을 막아줄 그늘막이 없어 여간 고통스럽지 않아 

   땀은 비 오듯이 쏟아지고 한증막처럼 더워진 육신에서 한 대야 빠져 나오는 신진대사의 찌꺼기들.

   모든 미련을 버리고 한 점 목표를 정하고 나니 차라리 개운하고 홀가분해집니다.


   인생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차라리 즐기라 했던가!

   누가 이 장대한 자연 앞에서 산 앞에서 자신 있다 허풍을 떨 것인가?

   산은 늘 우리에게 자세를 낮추고 겸허하게 임하라 가르칩니다.

   거대한 산은 삼킬 듯이 버티어 있고 그 앞에서 힘겹게 오르는 우리는 너무도 초라하고 작아 보입니다.


   그러나 좌절할 수 없는 것은 내 자신이 스스로 택한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넘어야 하는 이 순간 이 가혹한 형벌 같은 도전을 견디게 하는 것은 함께 하는 동행들의 다독이는 격려.

   산에서 우리는 늘 거짓말쟁이가 됩니다.

   거의 다 왔다고. 오아시스가 바로 저기이고 정상이 멀지 않다고..






   조금이라도 더 가려고 콜로라도 강물을 그냥 지나친 일행들이 차마 견디지 못해 이제야 나타난 시냇물에 몸을 담그고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수인사를 하고 지나 바쁘게 지나칩니다.

   조금이라도 앞서가 인디언 가든에서 시원한 물들을 채워서 가져오리라 마음먹고 오르막길을 차고 오르는데 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잠이 몰려와 걷기가 힘들 지경입니다.


    그래도 힘내어 오르고 올라 Tip Off 지점 가까이 접근하니 레인저 한사람이 내려옵니다.

    나에게 에너지 성분이 든 가루를 태워 물을 권합니다. 그 물을 마시고 나니 피로가 싹 가셔지며 다리에 힘이 올라 옵니다.

    그리고 정말 힘든 등정을 하고 있는 우리 일행들을 좀 도와달라고 요청을 하니 자신의 직업이 이것이라며 하얀 치아를 

    드러내 웃어 보이고 빠른 걸음으로 내려갑니다.


   인디언가든 수돗가에 도착하니 먼저 온 몇 사람은 어느새 벤치를 하나씩 차지하고 잠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광폭한 일기 속에서는 차라리 해가 식고 산그늘이 들 때 까지 부족한 수면을 채우고 쉬어감이 현명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나도 30여분 정도를 잤을까 정신을 차리고 후다닥 일어나 갖고있는 모든병에 모두 물을 채우고 서둘러 둘러보니 동행들이 눈안에 들어옵니다.

   그 처절한 자신과의 투쟁이 참으로 처연하게 보였고 인간의 능력이란 참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위대한 모습입니다.








   대장은 일단은 모두 오아시스에 도착하였고 푹 쉬었다 올라오라고 말하고 잘 걷는 한분과 함께 정상을 향해 달려갑니다.

   대장은 어서 정상에 올라 도와줄 방법을 강구하리라 여기며 거의 뛰듯이 산그늘로 들어섭니다.

   평소에는 이 길이 적어도 4시간은 소요되는데 이날은 3시간 만에 주파했다고 합니다.

   대장은 어둠이 깔리며 더위가 물러간 탓도 있지만 주어진 소명과 책임이 있기에 쉬어갈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저물어가며 산하를 적시는 석양빛이 너무도 아름다워 사진은 찍어가며 또 한숨도 돌리며 올라가는 감성도 있었다고 합니다.


   해는 이미 깊숙한 서녘으로 넘어갔고 어둠이 짙어가는 캐년의 마지막 정상이 저만치에 나타납니다.

   우리들은 한발 한발이 난행 그 자체의 비탈길입니다.

    





   체력은 이미 바닥이고 그저 혼신을 다해서 정신력으로 오릅니다.

   마침내 정상에 발을 딛고 확인한 시간.

   열시 반. 무려 17시간이 더 걸린 참으로 기나긴 하루였습니다.

   그랜드 캐년 종주 플러스를 제대로 한 하루. 비록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해냈다는 자부심이 기쁨으로 승화되는 순간입니다.


   다들 손을 맞잡고 어깨를 감싸고 서로 격려의 말들을 아끼지 않고 나눕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둘러앉아서 오늘 생일 맞은 내가 한턱 쏜 저녁상 하나씩 받고 혹독하고도 기나긴 여정을 극복한 자부심의 무용담을 

   안주삼아 정상주 한잔씩을 나눕니다.

   바람 한결 시원스레 불어주고 지나가며 참으로 수고했다며 치하하는 듯 토닥거려줍니다.


   특히 구겨진 휴지처럼 혹은 시체처럼 쓰러져 버린 이들에게 말입니다.

   구름을 벗어난 밤 달이 아늑한 푸르름으로 다시 비끼며 그 장엄한 그랜드 캐년을 비추고

   또 다른 시간 속으로의 여행을 위해 영면을 취하려 합니다.

   길게 내뿜는 날숨 속에 오늘 우리의 여정도 푸근하게 잠들려 합니다.






  난 이날 그랜드케년 트랙킹때 34 km를 17시간 30분 걸려 종주를 마쳤습니다.

  내 생애 가장 길게, 그리고 가장 많이 걸었던 날이었습니다.

  또 이 날 75번째 생일(6/21)을 이곳 그랜드케년에서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이 나이에도 트랙킹을 즐길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을 주신 제 돌아가신 부모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