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아내의 걸음마 연습

master 42 2019. 11. 18. 22:28


오늘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10시쯤 아내가 있는 요양병원으로 간다.

10시 반이 넘어 병상 옆에 앉아 살짝 잠들고 있는 아내를 본다. 합죽한 입을 이쁘게 다물고 자고 있다.

아내는 이가 거의 다 빠지고 없다. 내가 그리고 아들이 틀니를 하라고 해도 지금 까지 고집스럽게 합죽한 입모습으로 지내고 있다.

오래전에 처음으로 해 줬던 틀니가 엄청 불편했던지 그 후로는 틀니 이야기만 나와도 손사래를 쳤다.

 

지난 추석때 겪었던 응급실 후송 사태(?) 이후 아내는 회복이 더디고 여느 환자들 같이 점점 자존감을 잃어가고 있다.

본인이 해결하던 일들이 간병인의 도움을 받어야 하고, 또 그 도움들을 기다리는 환자로 급변해갔다.

기력이 없어서 수술을 할 수 없으니 기력이 회복될 때 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병원의 도움으로 기력 회복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난 회사로 출근하기 전에 먼저 아내의 병실을 찾아간다. 일어나 걷지 못하고 있는 아내를 걷게 해 볼려고 여러번 시도해 봤으나

기력이 없는지 완강히 거부해 왔다.

그런데 열흘 전쯤부터 내가 한번 걸어보자하니 눈을 깜빡이더니 그러자고 했다.

얼른 보행 보조기를 갖고 오고, 침대에서 일으켜 세워 안전하게 바지 뒷춤을 잡고 걸음마를 시켰다.

보조기를 잡고 몇 걸음 걷는데 몇 발자국 가볍게 내 딛는다.

내가 안도의 숨을 쉬고 있는데 아내는 보행기 잡은 팔을 떨면서 못 걷겠다고 한다.

아마 오래 누워있어서 그런지 다리에 기력이 없어 보였다. 이날 걸었던 거리는 10m 정도였다.

 

그렇게 매일 걷기 연습을 해서 그런지 서서히 걷는 거리가 늘어났다. 그러나 5m 정도 걸으면 쉬고, 또 힘들어 했다.

걷는 거리도 20m 정도였다.

오늘 아침에 걸으니 단숨에 20m를 걷고 잠시 쉬더니 10m 정도를 더 걷고 쉬자고 한다.

옆 병실에서 아내를 간병하고 있던 분이 나오시면서 오늘은 아주 성적이 좋아 보이 십니다한다.

그리고 10m를 더 걸어 침대 옆으로 오더니 눕혀 달라고 한다.

누워서 목이 마른지 두유를 달라고 해서 다 마셨다.

 

그러고 한동안 말이 없더니 띄엄띄엄 대학 다니는 손자 이야기도 묻고 미국에 살고 있는 딸아이 이야기도 묻는다.

그런데 아내가 묻는 이야기는 내용이 매일 같은 이야기다. 나도 아내한테 좋은 이야기만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니 곧 점심시간이라 난 회사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앞산 순환도로 왼쪽으로 저물어 가는 가을 단풍이 익어가고 있다.

난 매일 이 길을 오가고 있다.

언젠가는 나도 아내처럼 병상에 누워 있겠지.

 

그때는 난 익어가는 단풍을 볼 수 있을까?

 

(( 다음 일요일, 나는 파키스탄으로 업무로 일주일간 출장 가야한다.

   그전 같으면 보름 정도 걸리는 출장이지만 아내 때문에 일찍 돌아올려고 한다.

   내가 없는 동안 아내를 걸음마 시키듯이 해 줄 간병인을 마련해 두고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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