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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출장-상해국제섬유기계전시회 참관기

회사 주변 이야기

by master 42 2012. 6. 2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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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국제전시장이다. 아마 축구장 3개정도는 되어 보인다. 1년 내내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벌써 6월이 다 가고 있다.

난 6월 한달간 엄청 바쁘게 지냈다. 아니 바쁘게 헤집고 다녔다는게 맞는 말이다.

6월초 블로그에서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분의 농장에서 매실을 좀 많이(50kg)따왔다.

그전에는 맨날 얻어만 먹고 살었기에 이번이 처음이라 우선 매실 담글 그릇을 구하는데 허둥댔는데,

매실을 싰고, 담그고 하느라 며칠을 보내고 곧바로 6월 11일 상해로 날라갔다.

6월13일 12시, 인천공항으로 귀국하여 오후 2시 비행기로 유럽으로 날라갔다. 그리고 21일 귀국했다.

 

6월 12일 부터 상해에서 국제섬유기계전시회가 열린다. 난 매년 이 전시회만은 꼭 구경하러 간다.

1973년 부터 오사카섬유기계전시회 부터 유럽에서 개최되는 세계섬유기계전시회 까지 2년에 한번씩은 다녔다.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 4년마다 한번씩 개최하니 2년마다 다닐수 있었다.

70년대, 80년대 우리나락 섬유기계 기술이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서 많이 뒤떨어져 있을때

난 그런 전시회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수 있었고, 선진 기술을 배울수 있었다.

축구장 두배도 넘을듯한 전시장을 사흘간 발이 부르트도록 눈치보지 않고 헤집고 다녔다.

 

 

실을 뽑는 방적기계의 일종이다. 완전 자동이라 실이 떨어지면 떨어진 실을 찾아 매듭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어준다.

 

 

70년대, 80년대 까지는 첫째관에서 부터 마지막관 까지, 실을 뽑는 방적부분에서 부터 제직, 염색, 프린트....

그리고 마지막 가공, 기계 부품 까지 가능한한 많이 보고 머리속에 많이 넣을려고 다녔고, 조용한곳에서

메모지에 메모도 하고 스케치도 하여 돌아와서는 즉시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업의 주품목이 그때 그렇게 발바닥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힘들게 다니며 배우고

컨닝(?)하며 얻어온 수확들이다.

 

처음에는 관심이 조금만 있어도 카타록을 수집하였기에 돌아올때는 그 무게만도 엄청났다.

80년대 말 부터는 내 관심 부분만 열심히 보고 다니니 훨신 쉽게 구경할수 있었다.

이때 배웠던 기술로 내 형님 공장에서 공정의 자동화를 하나하나 착착 진행 시켰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서로가 경쟁하던 시대라 다른 공장에서 자동화된 기계를 구경할려고 하면 보여주지않고

비밀스럽게 혼자만 사용했던 시절이었다.

 

 

전시장 곳곳에서는 이런 팻션쇼가 열리는곳이 많다. 전시된 기계로 만들수 있는 옷들이라고 선전하고있다.

 

 

그리고 80년대말 형님공장에서 강퇴당하여 자본도 없이 시작했던 사업이 타올공장 봉제자동화 사업이었다.

직접 손으로 도면을 그리고, 하청공장 찾아다니며 만들어 납품하였으니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같다.

그래도 기술이란것은 자꾸 발전하고 변화가 있어야 하니 이런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아이디어를 얻어

개선하고 개발하여 지금의 기계로 발전해 왔다.

IMF불경기때 1년간 파묻혀 개발했던 기계가 2000년 부터 계속 잘 팔리고 있고, 또 개선과 개발에 소홀하지 않아

만들때 마다 조금씩 발전 할려고 노력하고있다.

난 이렇게 기계를 개발하고 아이디어를 짜내는데 소질도 있는것 같고, 또 취미로 생각하니 재미가 있다.

다행인것은 내가 만드는 기계는 우리나라에서 경쟁자없이 유일하게 나만 만들고, 세계에서도 7~8개 회사뿐이다.

 

상해 전시장은 아마 세계에서 가장 큰 전시장인것 같다.

그래도 내가 관심을 갖고있는 부분만 보니 하룻만에 가볍게 볼수 있었다.

전시장을 몇바퀴 돌아보니 작년에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중국의 기계 발전 속도는 엄청스레 빠른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이나 유럽의 기계들은 전혀 출품하지 않고 있다.

다만 중국의 기계들은 부품의 가공성이나 그 정밀도가 조금 떨어지는것 같으나 그것도 얼마있지 않으면 따라올것 같다.

 

 

 

 

상해섬유기계전시회는 세계전시회가 아니라 중국 그들만의 잔치인것 같다.

소재에서 부터 각분야의 기계, 소프트웨어 까지....정말 눈이 핑핑 돌 정도다.

유럽의 기계 메이커들은 첨단화된 그들의 기술을 

지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고, 중국의 기술자들은 그런

기술과 기계들을 컨닝하여 복사품을 만들어 내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내가 70, 80년대에 일본, 유럽의 전시장을 발이 아프도록 다니며 눈을 부릅뜨고 그랬듯이 말이다.

 

 

 

 

생해에 머무는 동안은 호텔을 이용하지 않고 매년 그랬듯이 포동에 있는 조선족 민박집을 이용했다.

사흘째 되던날 6월 13일, 아침 비행기로 인천공으로 출발하여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12시다.

빠른 입국수속을 끝내고 오후 2시 비행기로 유럽으로 떠났다.

참 좋은 세상이다.

한국, 중국, 유럽을 이렇게 쉽게 다닐수 있으니....

 

두어해 전에는 잘 몰랐는데 나이가 70을 넘고 보니 시차적응이 쉽지않다.

6월 21일 돌아와 밀린일 하느라 바쁘게 지내지만 낮에는 시차 때문에 비몽사몽이다.

운전하면서도 교차로에서  정지하고 있는동안 졸립다.

밤에는 눈이 반짝거리니 밀렸던 설계, 또 며칠전에 받은 오더를 설계하니 좋으나 낮에는 죽을 맛이다.

이러니 유럽에서 찍어온 사진을 정리하지도 못하고 마음만 바쁠 뿐이다.

 

유럽 이야기는 다음에 올려야겠다.

 

 

 

 위의 기계는 PP사를 원료로 하여 광폭(7m40cm)의 원단을 짜는 기계다.

산업용인데 고속도로, 제방, 항만공사...등등의 광폭의 원단이 쓰이고 있다.

지금 우리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 배낭등도 이 원단으로 만든다.

 

 

 

 

 위의 회사는 유럽의 직기메이커 피카놀이다.

한국 섬유산업이 한창 발전하던 70, 80년대에 한국 섬유공장들이 많이 쓰던 직기회사다.

10년전 영국 전시회장에서 볼때는 지금 사진의 규모 보다 4배는 더 컷던것 같다.

부스 크기도 줄였고, 출품 기계도 줄였다. 유럽 기계메이커들이 다 그렇게 하고있다.

 

 

 중국제 타올을 짜는 기계인데 무늬를 수놓듯이 짜는 전자자카드를 겸해서 선전하고 있다.

성능이 좋다고 하나 최근에 일본에서 들었던 바로는 고장이 심해서 세워놓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 국내에서는 잘 돌아가는데 A/S기사가 신속하게 처리해 주니 그런것 같다.

외국에 팔고나면 A/S는 뒷전이라니...그래서 중국제라는 말이 나오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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