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주인 잘 못 만난 가방 이야기-17년 사용했던 가방을 보내며

master 42 2013. 11. 23. 17:43

 

 

             내 나이 50이 다 되었을 때 회사는 나이 든 내가 거추장스러웠는지 나를 강퇴시켰다. 아니 강퇴당했다.            

             그 후 이 GENOVA 여행용 가방과 함께 온 세계를 17년 함께 다니고 나니 이제 나도 이 업계에서 조금은 알아주더라. 한 우물을 파면된다.

             상처뿐인 이 가방 같이 나도 은퇴할 때가 된 것 같다. GENOVA 수고했다, 고맙다.

 

 

가방, 너는 주인을 정말 잘 못 만난 것 같다.

17년을 나와 같이 여행하며 내 짐들을 너의 가슴속에 안고 다닌 너를 오늘 보낼려니 무한한 감회에 젖어드는구나.

5대양 6대주를 번잡스럽게 뛰어다닌 너의 주인 덕에 너도 한때는 세계 구경을 꽤나 한다며 신나게 따라다녔지.

짐을 더 많이 넣으려고 너의 위에 올라타고 누르며 고문도 했었는데 넌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잘도 견뎌 주었다.

혹시나 짐이 많아 가방이 터질세라 걱정하여 또 별도의 밴드로 묶고 다니기도 했는데 너는 용케도 견뎌왔다.

 

1995년, 초가을에 GENOVA 너를 만났지. 그 당시만 해도 삼소 나이트 같은 가방들은 국산화되지 않아 엄청 고가였는데

너는 한국산인데도 가격도 헐했고, 또 튼튼하여 언제나 나와 같이 비행기에 동승하여 다녔지.

한동안은 나는 너를 짐짝으로 부치지 않고 언제나 나와 함께 기내로 같이 데리고 들어와 널 선반 위에 정좌시켰지.

그때만 해도 내가 젊어서 너를 끌고 다닐 힘도, 또 기내 선반 위로 들어 오릴 수 있는 힘이 있었을 때였다.

참 너와 함께했던 그때가 그립다.

비행기 기다리는 시간에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두발을 너의 꼭지에 얹어두고 있노라면 그게 세계에서 가장 편했던 자세였어.

아마 그때 읽었던 책들이 무슨 책인지는 기억에 없으나 그래도 편안한 자세로 책 꽤나 많이 읽었지.

 

 

 

 

 

 

어느 날이었던가, 인천에서 방콕 도착하여 카라치행 비행기로 갈아타는 시간이 2시간 30분이면 넉넉하다고 생각했는데

비행기 고장으로 인해 출발 시간이 늦어져서 방콕에서 카라치행 비행기 갈아타는 시간 20분 남겨두고 도착했을 때는

정말 하늘이 노란색이었다.

시간이 넉넉한 보통 때 같으면 너를 카트에 태워 카라치 가는 게이트로 천천히 면세점도 구경하며 여유스럽게 걸어갔는데

이날만은 카트에 태우지도 않고 너를 끌고 우사인 볼트 100m 단거리 달리듯이 달렸으니 난 그때 네가 내손에 매달려

끌려 오고 있는지 조차 잊고 무의식으로 달렸다.

그런데 게이트에 도착해 보니 카라치행 비행기가 1시간 늦게 출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허망했던 사건은 정말 코미디야....

그때만 해도 나도 너도 젊었을 때였으니....

 

그래도 잊을 수 없는 큰 사건은 너를 잃어버렸을 때다.

카라치에서 밤 11시 55분 비행기를 타고 방콕에 내리면 아침 6시 30분이라  난 그때 방콕에서 낮시간에 손님을 만날 약속을 해 두었기에

너를 인천으로 보내고 난 방콕에 내려 볼일 보고 저녁 비행기로 다음날 인천 공항에 도착했는데 화물 벨트가 멈춰 설 때까지 네가 보이지 않는 거야.

너와 함께 다닌지도 10년 가까이 되었을 때였으니 내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는지 너는 알 거야.

그래도 짐이 도착되지 않았다고 신고하여, 항공사에서 다음날 찾아서 대구에 있는 내 집으로 정중하게 모셔왔을 때 내가 너를 끌어안고 싶었다.

넌 혹시나 역마살 낀 주인 떠나 다른 주인 한 테로 가고 싶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 내 옆을 떠나 보니 어땠었나? 내가 좋았지?

 

 

 

 

 

바퀴가 닳아서 만든 회사로 보내어 A/S를 받았는데 그래도 오래 쓰니 바퀴의 고무가 낡아 떨어져 나갔다.

스티커들, 긁힌 자국들... 상처뿐인 몰골이다.

 

 

다니는 동안 체크인할 때 너의 얼굴이나 몸에 아무렇게나 덕지덕지 스티커를 부쳐대고, 화물 취급하는 사람들은 자기 가방 아니라고

아무렇게 마구 던지며 컨베이어 벨트로 옮길 때는 넌 무척 마음이 아팠을 거다. 그래도 넌 전혀 내색하지 않었지.

군데군데 찌그러지고, 다친 자국들을 볼 때면 처음에는 마음이 안타까웠는데 세월이 흐르니 그것도 무관심해 지드 라.

내가 힘 있고 젊었을 때는 너를 함부로 짐짝 취급하지 않고 내가 직접 너를 데리고 기내까지 같이 다녔는데, 내가 힘이 모자라니

하는 수 없이 너를 다른 가방과 함께 짐칸에 태우게 되고, 나도 다른 사람 같이 짐칸으로 보내는 너를 외면하게 되드라.

아마, 넌 나에게 크나큰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이 드니 인생사 다 그런 거지 하며 얼굴에 철판 깔고 순간 잊게 되드라.

 

그런데 나도 늙어가고, 너도 자꾸 나이가 들어가니 서서히 너의 몸도 늙어가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지.

상처 나고 찌그러진 너의 몸도 그렇거니와 잠금장치가 고장 나고부터는 나도 걱정이 되어 너의 몸통을 밴드로 묶고, 또 비닐테이프로

너를 칭칭 감고 다니니 너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기술자라 그 고장 난 잠금장치를 내 자식 다루듯이 고쳐서 전혀 지금 까지 아무런 사고 없이 너와 함께 다녔지.

손잡이가 부러졌을 때는 임기응변으로 비닐테이프로 감아 지금 까지 사용하고 있으나 큰 불편이 없었다.

그러나 칠순의 내가  너무 늙은 너를 데리고 다니기에는 걱정도 걱정이고, 내가 너무 힘이 들어 이제 너와 헤어지려고 한다.

아니 헤어져야겠다. 

 

나를 너무 야속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인생은 다 그런 거니까. 너의 인생도, 내 인생도....

내가 20여 년 강한 집념 갖고 사랑했던 직장에서 50 나이가 되니 물어보지도 않고 나가라고 강퇴시키더라.

요즘 명퇴가 40대라 한다 하니 넌 그래도 정상적인 정년을 맞이한 거다.

너를 아끼는 마음에 정말 고이 보내 드리마.

그동안 내 옆에서 내 짐을 안아주고, 품고 다니고, 냄새나는 내 발을 얹어도 아무런 불평 없이 견뎌주었던 너,

너를 사랑했다.

너를 사랑한다.

 

 

 

 

찍히고, 할퀴고, 덕지덕지 발린 스티가 들... 그 몰골이 가엽다.

짐꾼들이 던져 손잡이가 부러졌을 때 비닐테이프로 감고 다닌 흔적...

 

 

가방아!  잘 가거라.

다음 세상에 태어나거든 나 같은 주인은 만나지 말아라.

너를 보내며 오늘 내 마음이 엄청 울적하다.

 

오늘 새로운 너를 닮지 않은 새로운 가방을 하나 얻었다.

앞으로 이 친구와 함께 다닐 거다.

월요일(11/25), 새로 온 가방을 들고 파키스탄, 인도로 출장 간다.

섭섭히 생각하지 말고 새로 온 친구의 장도를 빌어주라.

 

그동안 수고했다.

잘 가거라.

 

 

 

                                                    새 가방이다.

                                                    아들 넘이 사용하던 삼소 나이트 가방인데 몇 번 들고 다니고 나니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