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강창 나들이

master 42 2005. 3. 18. 01:43

 

취수장에서 본 화원 유원지
오늘 오랫만에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강창으로 나가봤다.
봄나들이라 해도 될성 싶다.
성서공단에 볼일을 보고나니 시간이 많이 남아 가까운 강창으로 나갔다.
어제 온 비로 들녁이 완전히 봄 기운이 돈다.
그러나 공단이 들어서고 부터 강변은 죽어가고 있는것 같이 보인다.
강둑을 따라 포장도로가 뚫여있고, 그 옆으로 공장의 쇠소리가 들려온다.
그옛날 박정희 대통령이 좋아했다던 강창 매운탕은 어디로 갔는지 그 자취를 볼수없다.
1948년 늦가을 고향을 떠나 어머님 손자고 걸어서 이길로 대구까지 들어왔던 기억이 난다.
50년대 내가 이 강을 건너 고향을 갈때면 나룻배로 건넜는데 사공은 어디가고...
6.25를 거치면서 이곳 강창에 목재 다리가 세번 놓이고, 홍수로 세번 떠내려갔다.
내 기억으로는 콰이강의 다리로 연상되지만 그 보다는 더 튼튼했던걸로 안다.
그러나 세번 떠내려가고 고등학교 졸업때 까지 다리없이 나룻배로 건너 다녔다.
겨울이면 얼음위로 건너가도 배삯은 주어야 했다.
밤늦게 건널때면 고함을 질러 사공을 불렀던 기억이 난다.
선거철만 되면 강창에 다리 놓는게 선거 공약으로 외쳤으나 한동안 빈공약으로 되다가
내가 군에서 제대하니 다리가 놓여 있었다.
중학교 다닐때 친구들과 강창 모래사장에서 뛰놀며 멱감던 생각이 난다.
그러나 60년대 산업이 발달하니 맑디맑던 강창이 탁류로 변하는데는 금방 이었다.
그러고 제방이 수리되고 둔치가 만들어지고, 모두들 제 정신이 드는지 물의 중요성을 
느꼈는지 수질정화 시설을 한다고 한동안 부산을 떨고나니 서서히 맑은 물이 흐른다.
그러나 그 옛날 마실수 있던 그물은 아니다.
조금 맑아졌다고 할 정도다.
비만 오면 대구의 많은 쓰레기가 떠내려 온다하니 아직도 정신은 덜 차렸는것 같다.

억새풀

취수장 강 건너 들녁
대구의 상수원을 낙동강으로 정하고 금호강과 만나는 지점에서 조금 상류에서 취수하니
지금의 상수원으로 자리잡았다.
부근에 너저부리 하던 식당들을 정리하고, 다산으로 강을 건너던 나룻배도 없애고, 화원 
유원지에서 다산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놓아 주었다.
강건너 아름드리 포푸라 나무도 모두 베어버리고 제방공사를 하여 말끔히 정리하였다.
상수원 주위에 철책을 만들어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오늘 몇장의 사진을 담으러 들어가다가 경비원 한테서 주의를 들었다.
70년대에는 들어가는 마을에는 쓸어져 가는 오두막 집들 이었는데, 모두들 집을 
개량했는지아니면 외지 사람들이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깔끔해 보인다.
옛날 이맘때면 농사가 시작 되는데 밭뙤기에는 농부가 보이지 않는다.
또 봄나물 뜯는 아가씨들도 많이 보였는데 강둑에 겨우 봄나물 뜯는 한 아주머니 정도다.
봄철, 대구에서 고향을 가노라면 강건너 산밑 따사로운 마을에 복사꽃이 만발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지금 그 복숭아 밭엔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상가와 주택들이 즐비하다.
강을 사이에 두고 대구쪽은 공업단지요, 건너는 주택단지로 변했다.
홍수가 나면 항상 물이 밀고 들어와 농사를 망쳤던 지금의 공업단지인 성서는 옛모습을 
전혀 찾을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끝까지 땅을 잡고 농사를 고집했던 우둔한 사람들은 보상을 많이 받아 늦게 부자가 
되었고, 잔머리 굴리며 일찍 땅팔아 다른 사업한답시고 거드럼 피우던 사람들은 
빈 털털리가 되었다고 한다.
오늘 봄나들이(?) 겸해서 옛 추억을 더듬어 다녀 봤지만 우울 하기만 하다.

성서 공업단지




억새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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