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대간, 정맥, 일반)

설악산 귀때기청봉 산행기

master 42 2012. 5. 22. 19:35

 

 

 

이 산행기는 지난 5월 13일, 설악산 한계령에서 귀떼기청을 오르고 대승령, 대승폭포를 거쳐

장수대로 내려왔던 그때의 산행 기록이다.

요즘 내 일상에 일어난 복잡다단한 일 때문에 블로그에 글 쓰기가 어려워 많이 소홀했다.

이제 어느정도 그 끝이 보이는것 같아 늦은 산행기지만 서서히 정리해 보고 있다.

 

5월 13일, 새벽을 가르며 달려오니 09:30에 한계령에서 설악을 오를수 있었다.

7년전 늦은 나이에 도전했던 백두대간 종주때 이 한계령에서 올라 중청- 공룡능선-설악동(14시간)으로 내려온 기억을 생각하며

처음 올라가는 귀떼기청을 년식(年式)을 망각한 만용을 부리며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다.

 

 

 

 

 

해외출장을 다녀온터라 4주만에 처음걸을 장거리 등산을 대비해서 5월3일 비슬산을 왕복하며 체력을 테스트해 봤다.

그런데로 걸을만해서 귀떼기청에 도전했는데 대청봉, 귀떼기청 삼거리쯤에 오니 만용을 부리고 있다는걸 느낄수 있었다.

그래도 시작했으니 앞에 닥아오는 너덜지대를 마음만은 가볍게 올라가기 시작했지만 넌더리 나는 너덜지대다.

백두대간 종주때 설악에서 유명한 황철봉 너덜지대도 넘었는데 라고 마음속으로 다잡으며 올라갔다.

그래도 이곳은 야간산행을 위해 형광표식봉도 설치되어 있으니 참 편리할것 같다.

 

설악의 봄은 남쪽과는 달리 나무의 잎도 늦게 나오고 진달래도 이제 한창인것 같다.

이날따라 옅은 안개가 끼어 맑은 조망이 조금은 아쉬웠다.

너덜지대를 힘들여 지나고 나니 귀떼기청이다.

그러나 곧이어 또 작은 너덜지대가 나오고 연이어 암능구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장수대쪽의 조망이 장가계 같은 느낌이라 생각하며 대승령을 향해서 내려간다.

 

 

 

 

이맘때쯤 많이 지쳤는지 대승령 가는 안부에서 점심을 먹는다.

자주 나타나는 표식판을 게으른넘 밭고랑 헤아리듯 읊어가며 남은 이정에 투정을 부려본다.

여러곳에 암능구간이 나타나고, 높은 계단구간을 지나기도 했다.

아마 이 코스는 계단이 없다면 진행속도는 엄청 느리고, 또 위험한 구간일것 같다.

몇군데를 지나며 밑을 내려다 보고 아찔한 현기증을 느낄정도니 나도 늙었다.

 

서서히 두려움도 느껴지고, 또 그 핑게삼아 낮은산만 찾아 다녀야 할것 같다.

그래도 이런곳을 오를수 있는것은 후배님들이 종종 던져주는 말들이 내게는 용기를 불러 일으킨다.

완만한 능선길을 걸으며 후배님들과 나누는 대화는 우리들 일상과 과거,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난 언제나 후배님들과 이야기를 나눌때면 많은 용기를 얻는다.

나와 동행해 주는 후배님들이 있는것 만으로도 나는 감사해야 한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역시 무서운가 보다.

게으런넘 밭고랑 헤아리며 걸었던 너덜길, 암능길도 시간이 지나니 대승령이란 표식판이 떠억하니 앞에 서있다.

몇년전에 내려갔던 12선녀탕 계곡길이 오른쪽으로 보인다.

대승폭포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가파른 돌길이다.

오늘은 하루내내 너덜길, 암능, 돌길 뿐이니, 흙길 한번 폭신하게 느껴 보지 못하여 모두들 무릎통증에 힘들어 한다.

 

 

 

 

실날같은 물줄기가 바람에 흩날리는 대승폭포에 도착하니 모두들 다 온듯한 기분이 든다고 한다.

난 힘없이 물줄기를 흩날리는 대승폭포를 보며 늙은 우리들의 어머니를 만나는것 같아 조금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 진다.

녹음이 우거진 풍경들 속에서 힘차게 흐르는 풍경을 보여줄때는 젊은 어머니가 생각나고, 또 그때는 검으티티한

폭포골이 물줄기에 휩쌓여 밝고 힘찬 계곡만을 보여 주었겠지.

그후 옛여인들은 고단한 삶을 살며 묵묵히 집안을 건사하며 닥아올 남은 인생을 기다렸겠지.

 

이제 자식들도 모두 성장하여 제길 찾아간 이즈음, 나이든 어머님은 힘없는 여인의 모습으로 대승폭포와 같이

누워있는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쉬어가는 악우들이여, 산자락에 떠억하니 힘없이 누워있는 어느 여인의 모습같이 보이지만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를 반겨주는 우리들의 어머니이니 우리들도 환한 웃음으로 포옹해 주자.

 

장수대에 내려오니 5시가 훨씬 넘은 시간인데도 하산주가 우리를 반기고 있다.

힘들었던 하루였다. 

그래도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