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초등 동기생들의 야유회-6,000원의 좋은 마음이 사고로...

master 42 2013. 4. 29. 20:42

 

거금대교

 

지난 토요일, 초등학교 동창 계모임(1955년 졸업) 9명은 12인승을 빌려 세명이 번갈아 가며 손수 운전하여

광양, 여수로 해서 고흥의 소록도, 거금도를 돌아 이틀간의 여행을 마치고 대구로 돌아왔다.

일년에 두번씩 우리들은 이런 방식으로 40년 가까이 봄놀이, 가을 놀이를 다니고 있다.

그런데 고흥을 떠날때쯤 사고가 났다.

우리들이 고흥으로 갈때 휴게소(고흥 우주항공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고 그 값을 잊고 못주고 와서

회장이 그 돈을 전해주고 돌아오다 경사진 언덕에서 굴러 얼굴에 심한 찰과상을 당하고 왼쪽 손목에 골절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다.

 

여수에서 유명하다는 게장 백반을 맛있게 먹고, 순천 국제정원박람회를 돌아보고 고흥으로 향했다.

고흥으로 가는 4차선 고속화국도를 달리다가 고흥 항공우주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에도 가고 쉬면서 커피를 시켜 마셨다.

모두 네잔을 시켜 마시며 주인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곳을 떠났다.

 

소록도 공원에 있는 소나무

 

 

떠난후 몇분후 총무가 쓴돈을 적으려는데 커피값을 주고오지 못했다며 즉시 안내에 물어 휴게소로 전화를 했다.

주인도 잊었다며 웃으며 다음에 돌아가실때 주고 가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들이 반대편 길로 가야하니 은행계좌번호를 알려주면 송금해 주겠다고 하고,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 달라고 했다.

그런데 돌아올때 까지 계좌번호가 오지않아, 돌아오던 길에 그 휴게소를 조금 지난 지점에서 마을길로 빠져나와 고속화도로

아래를 통과하여 휴게소 옹벽 옆에 도착하여 올라가는길을 찾었으나 다른길이 없어, 회장이 공사중인 경사진 곳으로 올라가서

6,000원을 돌려주고 다시 그 공사중인 경사진곳을 내려오던중 미끄러지며 굴러 얼굴에 심한 찰과상을 입고, 왼손목이 골절되는 큰 사고를 당했다.

 

부상당한 회장은 평생 처음 당하는 골정상이라며, 이만하기로 다행이라며 당황하고 침울해 하는 친구들을 안심시키는 말을 했으나

손목은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급히 차를 몰아 보성에 있는 병원 응급실에서 얼굴 찰과상을 치료하고 X-RAY로 확인하니 손목이 골절되었다고 한다.

다시 급히 차를 몰아 대구로 돌아오니 사고를 당한 친구는 엉겹걸에 당한 사고라 목이 마른지 물한병을 금방 다 마셔버린다.

 

 

 

거금도를 거쳐 고흥으로 들어오며 나이 70을 넘긴 노인들이 커피값 6,000원을 돌려주지 않고 그냥 대구로 돌아 오기에는

모두들 마음이 허락하지 않아 마을길로 돌아서 찾아 가드라도 커피값은 돌려주고 가기로 했다.

또 나이든 할아버지들이 작은돈이라도 돌려주는 모습을 갖고 살아야 한다며 모두들 같은 마음이었다.

지금 까지 살아온 우리들의 모습과 자존심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할것 같아서다.

 

내일(화요일), 골절상을 당한 친구는 수술을 한다.

편안히 봄놀이를 마치고 돌아와야 할 남편이 사고를 당하고 돌아왔으니 황당한 아내의 마음은 얼마나 상심될까를 생각해 보니 마음이 무겁다.

또 골절상을 당하고 돌아온 아버지를 보는 자식들의 안타깝고 황당스런 모습도 눈에 선하다.

아마 어제 밤부터 친구는 몹씨 아펐을것이다. 난 어릴때 골절상을 당해봐서 잘 알고있다.

 

골절상을 당한 친구는 이만하기로 다행이라며, 액댐했다며 주위 친구들을 안심 시켜준다.

우리들 나이보다 두살이 더 많은 74이다. 우리들이 초등학교(국민학교)를 다닐때는 이정도의 나이 차이는 보통이었다.

친구는 역시 형님같은 어른스런 마음을 보이며 봄놀이를 끝까지 잘 마치지 못하고 자기로 인해 분위가 침울해졌다며

미안하다고 몇번이고 이야기한다.

문옆에 앉은 자기가 먼저 일어날수 있어서 갈려고 했다고 한다. 어쩌면 회장이란 책임감이었겠지.

그 뒤에 앉은 등산으로 몸에 익은 감각도 갖은 내가 의자를 밀치고 갔다 왔으면 하는 후회를 해 본다.

 

살아가며 이런일들이 없을수는 없겠지만 나는 어른스럽고 형님같은, 의연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이는 이 친구가 존경스럽다.

70이 넘은 이 나이에 학교다닐때 급장했던 어릴때 이 친구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닥아온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들의 영원한 형님이다.

 

형님의 쾌유를 빈다.

 

 

             모두 9명이었는데 오른쪽 첫째분이 이런 변을 당했다. 지금은 모두 나이들어 비슷한 얼굴들이나

            초등(국민)학교 다닐때는 중간줄 첫째와 셋째분은 우리들 보다 나이도 두어살 많었고 어른(?) 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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