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오진 그리고 새로운 시작

master 42 2016. 10. 7.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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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같았던 지난 한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벌써 퇴원한지 삼일째가 된다.

9월 28일, 오랫만에 친구들과 만나 서문시장안에서 한잔했다. 그런데 밤새껏 배가 아파 혹시나 종종 앓던 위염인가 하고 

오랜동안 다니던 동네 내과병원을 찾으니 위경련이라는 진단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서 죽을 먹고 쉬었다.

그런데 아프던 배가 뒤틀리며 아파오니 더욱 통증이 심해온다.

오후가 되니 통증은 더욱 심해지기 시작한다. 이비인후과를 전공한 포항 아들넘 한테 전화해서 알아보라하고

다시 병원엘 찾아가니 수액과 진통제를 처방한다.


수액을 맞는 두시간 가까이 계속 창자가 끊어질듯한 진통이 와서 신음을 하니 의사는 X-레이 촬영을 마치고 장염이라고한다.

수액과 진통제를 주사했으니 집에돌아가 있으면 서서히 좋아질거라며 아픈 부위를 마사지 하란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니 누워 있지 못할 정도로 창자가 비틀려오는 통증이 계속 일어난다.

아들한테 전화하여 문의했더니 내과를 전공한 아들친구가 아마 맹장염일것 같다며 곧바로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하며

아들도 급히 대구로 출발한다고 한다. 저녁 7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 구급차 불러 급히 응급실에 도착하고, 창자를 쥐어짜는듯한 

통증으로 움켜쥐고, 허리도 펴진 못할 상태로 까무르지듯 응급실 침대에 누웠다.


곧이어 간호원이 달려와 수액과 진통제를 꼽고, X-레이, CT를 촬영하여, 진단을 받으니 맹장염이란다.

그것도 맹장이 터졌을 가능성이 많단다. 이때는 포항에서 아들넘이 와서 내옆을 지키며 의료진과 수술상담을 시작했다.

아들이 이 병원 수련의 출신이라 진행은 빨리되었다. 

9월29일 새벽 01시에 수술실로 실려가면서도 통증은 계속되어 수술에 대한 공포 보다는 마취로 진통을 잊고싶은 생각 뿐이었다.


새벽 04시, 수술후 회복실을 거쳐 나오니 아들넘이 기다리고 있다.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한다.

하루내내 창자를 쥐어짜듯 했던 통증은 전혀없고, 몸이 약간 움직이기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들이 전하는 이야기로는 맹장이 터져서 세척하느라 수술시간이 두배로 걸렸다고 한다. 

맹장이 터져서 큰 일 날뻔했다고 하며 병실로 옮겼다. 


병실로 돌아와 간병인이 시키는데로 심호흡을 3시간 했다. 심호흡을 많이해야 수술후유증이 적어진다고 해서...

9월29일, 09시쯤 주치의가 와서 몇가지 체크를 하더니 "어르신, 어떻게 맹장이 터지는 그 아픔을 미련스럽게 참었어요."한다.

그러면서 빨리 회복하기위해서 운동을 열심히 하란다. 그때 부터 일어나 후들거리는 다리로 열심히 복도를 걸었다.

오후가 되어 10월3일 파키스탄으로 출장갈 비행기표와 인천공항행 고속버스표를 취소시켰다.

처음 계획은 9월 27일 파키스탄으로 출장갈 계획이었으나 10월3일로 연기되었다.

만약 처음 계획데로 출장 갔었다면 그곳 열악한 의료환경에 고생했을거라고 생각하니 치가 떨려왔다.


내가 있었던 병실은 5인 일반병실로 암투병(위암, 대장암등)환자가 대부분인것 같었다. 나만 가벼운 맹장염 환자인것 같다.

복도를 왕복하며 운동하는 환자들 모두가 링거수액과 여러개의 치료제를 끌게에 달고, 살려고 열심히 운동한다.

특히 바로옆동에 있는 간이식환자들은 눈만뜨면 운동하는것 같었다. 

난 복도를 오가며 몇번 만나는 열심히 운동하는 환자들과 인사도 나누며 지내니 그들의 투병생활을 간간히 들을수 있었다.

이렇게 듣고, 보는 사이에 난 병원 분위기에 말려 들어가기 시작하고 슬며시 우울증이 닥아오기 시작한다.


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쉬고싶어서 친구들 한테 전혀 연락하지않고, 병문안도 정중히 거절했다.

다만 같이 출장갈 회사의 김전무만 불러서 혼자 가야하니 여러가지를 상의하고 지시해 주었다.

10월4일, 출장간 김전무와 연락되어 카톡으로 시운전한 기계의 상태를 동영상으로 보고받고, 몇가지 수정사항도 지시했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병실에서 머나먼 파키스탄의 공장에서 돌아가는 내기계의 상태를 동영상으로 점검할수 있으니...


10월4일, 아침에 주치의가 내일 퇴원하란다. 

10월5일, 10시가넘어 퇴원해서 집으로 왔다. 일주일간 병원죽을 먹지못해 엄청 힘들어했는데 오자말자 죽쒀 먹으니 

아직도 병원냄새가 나는것 같아 잘 넘어가지 않었다.

저녁이 되니 며느리가 포항에서 전복과 갈치를 보내왔다. 다음날 죽을 쒀 먹어보니 역시 입맛이 슬슬 돌아오는것 같다.

그동안 먹고 싶었던 과일도 먹어보고, 갈치찌게도 해 먹어보니 슬슬 힘도 나는것 같고 기분도 많이 좋아진다.


병실에서 건너편 침대에 누운 대장암 환자의 밤새 고통받는 소리가 나를 엄청 우울하게 만들었는데 이제는 차츰 

우울했던 병원 분위기에서 빠져 나오는것 같아 이 글을 쓰면서도 한층 머리가 맑아지는것 같다.

퇴원하던날, 곧 바로 책상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놓고 내년 1월에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개최되는 국제섬유기계전시회에 

출품할 기계를 마무리 설계하고 있다. 

이렇게 하니 일상으로 빨리 돌아오는것 같고, 병원에서 받었던 멘탈충격에서 쉽게 빠져나올수 있는것 같다.


병원에 있을때, 나를 오진했던 동네 내과로 전화해서 가벼운 항의도 하고 충고도 했다.

내 아들이 개업의라 오진할수 있을것 같아 좋은 말로 진료에 더 신중하라고 하니 오진을 인정하며 죄송하다고 한다.

어제도 김전무한테서 동영상 보고를 받고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며칠후면 설계도 끝날 것이고, 혼자 출장간 김전무도 돌아온다.

아마 나도 그때쯤에는 많이 회복되어 출근할수 있을것 같다.


출근하면 새로운 기계를 만들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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