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고향 가는길

master 42 2018. 11. 7.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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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곡으로 넘어가는 용두고개다. 옛 길이다.

벚꽃나무에 단풍이 드니 무척 아름답다. 



오늘(11/6. 화요일), 대구에서 내 고향 동곡 까지 걸었다.

고향을 떠나온지 70년이 되는 날이다.

10년전 60년이 되던해에 처음으로 고향 까지 걸었으니 이번이 두번째가 된다.


1948년, 가을 걷이를 다 끝낸 이맘때 쯤 어머님은 42살에 늦둥이로 낳은 막내인 내 손을 잡고 동곡 우미기 오두막집을 떠나 대구로 오셨다.

아버지가 그해 초여름 부터 내당동에 400여평에 집을 지으시기 시작하여 늦가을 거의 마무리를 할때 쯤 어머님과 나를 대구로 오게 하셨다.

초봄에 큰 형님을 장가 보내시고 새집을 지어 이듬해 봄에 신행을 해서 큰 아들을 위해 새 보금 자리를 마련해 줄려는 마음과, 나머지 터에

공장을 지으셔서 일본에서 배우셨던 메리야스 공장을 차려 사업을 해 볼려는 마음에서 터를 넓게 잡으셔서 집과 공장을 지으셨다.

이때 부터 아버지, 큰 형님, 작은 형님 3부자는 밤낮없이 열심히 사업에 몰두 하셨다.


난 이듬해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또 봄에 큰 형수님이 시집 오셨다.

조카가 태어나고 아버님이 하시는 사업도 서서히 번창하기 시작하니 온 식구가 밤낮없이 일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와 형님들이 사업을 시작한 이후 부터 난 지금 까지 의식주(衣食住)를 걱정해 본적이 없다.

풍족하지는 않었지만 지금 까지 돈에 대해 걱정해 본적도 없는것 같다. 가족 모두가 내핍을 했으니 나도 따라서 그렇게 생활했고 지금도

절약과 내핍이 생활화 되어있다. 어릴때 부터 군것질을 하지 않었어 그런지 지금도 밥, 술 외에는 군것질을 잘 하지 않는다.


내당동 우리집터는 황토흙이어서 방바닥도 벽체도 황토로 발랐고, 담장도 황토흙 벽돌로 쌓았다.

내가 대학생활과 군대복무를 마치고 20대 후반에 다시 이 집에서 10여년을 더 살었다.

형님 두분이 이 집에서 생활하셨고, 나 또한 신혼을 이 집에서 보냈다.

이 집을 지으신 아버님, 어머님도, 큰 형님도 이 집에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에 이 집은 남의 손에 넘어갔다.







성서 와룡산이 보인다.

산업단지를 위해 배후 주택단지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계명대학교 정문이다.

대명동 캠퍼스를 이곳으로 옮겨온지도 30년 가깝다.

지금은 동산병원도 옮겨왔다.

새로 옮긴 병원은 현제의 병원 보다 베드수가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오늘 가을 햇살이 따가웠다. 미세먼지가 심해서 마스크를 해야 한다는 방송을 들었으나 개의치 않고 등산화 조여신고 11시쯤 성서에서 출발했다.

10년전 처음 고향 가는길을 걸었을때는 어머님과 함께 도착했던 내당동 반고개에서 출발했지만 오늘은 주차하기 좋은 성서에서 출발했다.

가로수가 모두 단풍으로 물들으니 걷는 길이 너무 아름답다. 대구는 다른 도시에 비해서 나무가 많다.

성서를 지나 계명대학교가 가까워오니 성서 산업단지가 왼쪽으로 놓여있다. 그러나 경기가 위축되어 그런지 활기가 없게 느껴진다.

오른쪽은 와룡산이 있으나 높은 건물들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동산병원이 계명대학교옆으로 옮겨오고 있다.

대학교가 있는 대학가에 동산병원이 들어오니 새로운 상가가 형성되어 신축건물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강창이 가까워 오니 강 건너로 병풍같은 고층 아파트들이 남북으로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10년전 처음 이 길로 고향 가는길을 걸었을때는 아파트 건물 보다는 농토가 많었는데 지금은 8차선 대로 양옆으로 건물 뿐이다.

이곳 이름이 대실 그리고 죽곡인데 병원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많은 병원들이 경쟁하고 있다고 하고, 몇몇 병원들은 문닫는곳도 있다고 한다.



이호서당이다.


강창에 다리가 놓인것은 1960년대 중반이었다.

내가 대구로 이사올때는 나룻배로 건넜다.

나룻배는 겨울에 강이 얼어서 사람들이 얼음위로 걸어가더래도 배삯을 받었다.

6.25때 미군 공병대가 목재다리를 3번 건설했는데 큰 태풍이 와서 홍수가 나면 떠 내려갔다.


금호강물이 1980년대 까지 공업용수로 인해서 썪어가는 물이었다.

그후 하수 종말 처리장이 생기고 염색폐수를 정화하고 부터 맑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고기가 노닐고 있다.

멀리로 첨단산업단지가 들어서 있다.



10년전에만 해도 도로옆으로는 논밭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빌딩숲으로 변했다.

1980년대 까지 산아래 마을에는 복사꽃이 아름답게 피었던 마을이었다.



다사고개다.

아파트들이 다사고개에서 부터 시작해서 지었다.

고개 아래는 농지였기 때문에 그린벨트가 해제되고 부터 논을 전용해서 집을 지었다.

농지위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니 금방 빌딩숲으로 변했다.





다사 고개를 지나 문양으로 가는 돌고갯길로 들어섰다.

10년전 이곳을 지날때는 논이 많어 벼를 수확하는 광경을 보았는데 지금은 모두 텃밭으로 변해있고 테니스장으로 변한곳도 있다.

그 옛날 어머님과 대구로 걸어 들어올때 돌고개에서 어머님이 돌무더기위에 돌 하나를 얹어 놓으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빌었는데

오늘 그 돌무더기를 찾아보니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넘어가니 멀리로 문양 지하철역이 보인다. 노인들 한테 일거리를 만들어 주기위해 산에 우거진 풀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문양은 오래전 부터 논메기 매운탕으로 유명한데 역앞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차들이 많이 주차해 있다.

대구에서 미리 예약해 두고 지하철로 이곳에 도착하는 손님을 모시고 갈려는 식당의 차들이다.

문양역을 지나 마을을 톨과해 가는데 새로 지은집들이 여러채 보인다. 아마 대구 사람들이 헌집을 사서 새집을 지은것 같다.

마을을 지나 동곡으로 넘어가는 용두고개 쪽으로 걸어 올라 가는데 가을 걷이가 끝난 논에 주인 없는 비닐하우스가 서 있다.

아마 일손이 모자라서 비닐하우스 농사를 못 하는것 같다.



문양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옛날에는 사람들만 넘어다니던 길이었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부터 길을 넓혀나갔다.

난 이 길을 걸어서 대구로 이사왔다.


10년전, 이 길을 걸을때는 모두 논농사만 했다.

그때 쌀을 수확했는데 지금은 모두 텃밭으로 변했다.

또 테니장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문양 지하철역이 보인다.


문양역에는 노인들이 많이 모여있다.

대구에서 공짜로 지하철 타고 와서 간단히 점심먹고 놀다가는 노인들이 많다.

또 매운탕집에서예약된 손님을 기다리는 차들이 많이 주차해 있다.

주차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느 농촌도 마찬가지겠지만 이곳도 폐가가 많다.

대구에 거주 하는 사람들이 사서 집울 수리해서 새집을 만든다.

지금도 공사하는 집들이 종종 보인다.




동곡으로 넘어가는 용두고개로 올라가는 길이다.

옛날에는 좁았는데 농로길을 많이 넓혔다.

비닐하우스들이 있으나 농사지을 인력이 없어서 그냥 놀리고 있는 현실이다.

이곳에도 외국 노동자들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수 없단다.





내 어릴때 용두고개에는 늑대영감이 있었는데 어린 우리들은 모두 무서워 했다. 어머님은 내가 말을 듣지 않으면 "늑대영감 온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곳에 대장간이 있었는데 대장간 망치소리와 풀무질 하던 광경이 떠 오른다.

지금은 그곳에 아담한 양옥 두체가 잘 정비된 정원을 갖추고 텃밭에는 배추, 무우가 잘 자라고 있다.

오래된 지방도와 새로 만든 4차선 도로가 고갯길에서 만난다. 가로수의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 한동안 넋놓고 카메라를 드리 밀었다.

고개에서 조금 내려가니 옛날 도로에서 4차선 도로로 연결되는 도로가 나온다. 그곳이 옛날에는 우리논이 있었던 곳이다.

아버지가 할아버지 한테서 살림 날때 받은 논이었는데 대구로 이사올때 팔고 왔다고 하셨다.


파출소앞을 지나 하빈으로 가는 삼거리에서 바라보이는 언덕베기에 있던 그 옛날 우리 오두막집이 온데간데 없고 새로운 양옥집으로 변해있다.

오랜동안 옛모습데로 있었는데 1990년대초에 외지에서 온 젊은 사람이 오두막집을 허물고 새집을 지었다고 한다.

옛 오두막 집앞에는 닥나무가 있었는데 어머님이 보드러운 새잎을 따서 밥할때 쩌서 된장과 함께 아침 반찬으로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난 대구로 이사오고 부터 지금 까지 닥나무 잎사귀 쌈을 먹어 보지 못했다.


고향길 걷는 내내  어머님 손의 따스한 감각을 느끼며, 생각하며 걸었다.

어머님은 아버님 보다 4살 위 셨는데, 아버님이 77살에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88살에 돌아가셨다.

지금 내 나이가 77이니 내 건강은 어머님을 닮었다고할 수 있다.


아버님, 어머님,

좋은 건강을 주셔서 감사 합니다.



농사지을때 건너기위해 아까시아 나무를 베어서 다리를 놓았는데

그 나무에서 새싹이 나와 크게 자라고 있다.

밑에 흙도 없고 물도 공급되지 않는다.

끈질긴 생명력이다.


대구에서 공장하는 사장님의 주말 농장인데 심어놓은 배추가 잎이 노랗게 변하는 병이 들었다.

내가 병이라고 설명해 주니 그때서야 알고 어떻게 하면 되는냐고 묻는다.

나도 공장 텃밭에 심어놓은 배추가 노랗게 변해서 농약상에 가서 물어서 약을 뿌렸더니 지금은 괜찮아졌다.

나보고 고맙다고 한다. 내가 농사꾼도 아닌데...


문양못이다.

이곳은 낚시로 유명한곳이다.

내가 어릴때 작은 형님 따라 이곳 까지 왔던 기억이 난다.



동곡가는 옛날 길이다.

지금은 차들이 별로 다니지 않고 새로 생긴 4차선 도로로 다닌다.

그래도 단풍든 벚꽃나무가 아름답다.











4차선길과 옛길을 연결하는 도로다.

옛날 아버님이 할아버지 한테서 받은 논이 이곳에 있어다.



오른쪽 끝에 보이는 양옥집이 옛날 우리가 살었던 오두막집 터에 새로 지은 집이다.


10년전에 고향가는길을 처음 걷고 블로그에 포스팅했던 글 입니다.

http://blog.daum.net/bando_mc/13343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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