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삼대의 결혼 이야기

master 42 2005. 10. 29. 09:25

 

히데끼와 그의 사위(지난 여름 부산에서)
어제 업무차 일본을 사흘 다녀왔다.
한달여 전에 시코쿠(四國) 이마바리(今治)시에 한국에서 만든 전자 자가드
(Jacquard)(직물을 직조기에서 짤때 무늬를 만드는 기계)를 일본으로 수출했다.
언젠가 한번 소개 한바 있지만 이마바리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타올 생산지다.
지금은 많이 위축되어 있지만 그래도 제품 하나만은 예술품 같이 만들고 있다.
30여년을 이곳을 드나들었기에 지인들이 많아 한국에서 만든 전자 자가드를 내가
소개 하여 팔았다.
이번에는 처음 팔았던 1호기 시운전을 하러 갔다.
시운전은 성공리에 끝이나고 다음달 초에 실수요자들을 초청하여 가동 전시회를 
열려고 하여 그곳 대리점으로 운영하는 내 오랜 친구 아오이(靑井)씨와 A/S문제와 
기술적인 문제를 토의하고 돌아왔다.
오늘 그 동안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던 아오이씨의 자식의 아픈 상처를 이야기 할려고 한다.
지금 아오씨는 아들 둘을 두고 있고 , 장남인 히데끼는 아버지의 업을 승계받아 후계자로 
업을 이어가고 있고, 둘째는 일찍이 요리사로 수련을 쌓아 그곳에서 아내와 식당을
열어 지금은 꽤나 알려져 있다.
둘째 아들은 클때 부터 착실하여 그런데로 잘 커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큰 아들인 히데끼는 아버지가 일찍 결혼하여 낳았기에 어려웠던 시절에 사춘기를 
맞았고, 또 방황도 하여 크게 공부를 하지 못했다 한다.
그러던 히데끼가 아버지 일을 도우며 일할때 아가씨를 알아 딸 아이를 낳게되고 결혼을 
하게되고 연이어 둘째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러나 집안 가세는 꿈 많은 사춘기를 막 지난 어린 히데끼의 아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곤궁해서 자주 부부가 다투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날 아내가 가출하게 되고 이혼으로 종결되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히데끼가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과 같이 살아오고 있다.
옆에서 살펴주는 부모의 마음이야 오죽했겠느냐는 미루어 짐작하고 남는다.
더우기 아오이씨는 살기가 너무 바빠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걸 지금도 후회
하고 있다. 
더우기 소학교 다닐때 점심을 굶어가며 물배를 채우며 공부했고, 졸업하고 나서는 바로
공장에서 일을 배우며 생활전선으로 뛰어 들었고, 또 아오이씨 자신도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여공과 아이 부터 먼저 낳고 결혼했다고 한다.
그렇게 어렵게 살아가는 동안 아이들 교육에 신경쓸 틈이 없었다며 아버지의 전철을 
아들이 밟고 있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아오이씨의 손녀가 또 작년에 고등학교 3학년때 아이를 낳아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살림을 차렸다고 한다.
물론 사위도 어리니 어쩌면 삼대가 똑 같은 길을 걸어왔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인 히데끼는 어린 사위를 자기 공장에 데리고 일을 가르키고 있다.
그래야 안정된 삶과 기술을 배울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전철(무책임한 이혼)을 
밟지 않도록 부모로서의 노력을 하고 있다.
45살의 젊다고 할수 있는 히데끼는 지금까지 혼자 살아왔기에 그 고통을 혼자 삭이며 
힘들게 살아왔고, 다시는 이런 일들이 없도록 노력하는것 같다.
그러나 히데끼도 남자인지라 종종 여자들과 사귀고 또 빠져 드는 순진한 남자란다.
나이에 걸맞는 여자를 사귀지 않고 젊을때 헤어졌던 첫 여인의 잔영을 쫒아서 사귀는
여자는 젊은 여자들이라고 한다.
아버지 아오이씨는 큰 아들이 새 여자를 만나 가정적으로 안정을 찾았으면 하는 바램을 
오래전 부터 나에게 이야기 해 왔다.
그러나 어디나 마찬가지로 두자식 있는 남자와 재혼 할려는 여자가 흔하지 않다고 한다.
이번 출장길에 친구 아오이씨의 가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는 길은 좀 우울하다.
그래도 수출하는 기계가 인기를 얻어 많이 팔리기를 바랄뿐이다.
그래야 아오이씨의 사업이 날로 번창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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