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이야기

전철에서 만났던 노인 두분

master 42 2006. 5. 17. 11:07
누르면 음악이 나옵니다."부모님 은혜"

제갈공명의 출사표-글씨는 악비(岳飛)

 

지난주 카페 "산골마을" 봄 연주회에 참석 할려고 KTX로 서울역에 도착하여 영종도로 가기 위하여 인천행 전철을 탔다. 가는 길이 멀고 하여 마침 한자리 비어있는 경노석엘 앉았다. 요즘은 경로석엘 앉아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된것 같아서다. 내 양옆으로 나보다 더 나이든 두 분이 자리하고 계셨다. 두분이 서로 잘 알고 지내는지 왼쪽에 앉은 젊어 보이는 분이 오른쪽에 앉은 분에게 형님이라 하며 너스레를 떤다. 먼저 젊게 보이는 분에게 연세가 어떻게 되느냐 물으니 75세란다. 내 왼쪽에 계시는분을 가르키며 89세라 하며 아직도 일 나가신다 한다. 먼저 젊어 보이는 노인(?) 한테 여러가지로 물어 보았다. 혼자 살고 있으며 가게 두개를 세놓아서 그 수입으로 살아간다며 쓰기에 넉넉하다고 한다. 아이들은 모두 잘 살고 있는데 큰 아들넘 한테 가서 살고 싶은데 며느리가 전혀 움직여 주지를 않는다며 며느리 흉을 본다. 그러면서 며느리가 가게를 팔아 들어오면 받아준다나 어쩐다나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또 흉을 본다. 내 왼쪽에 앉은 분이 "이사람아 며느리 흉은 왜봐" 하면서 자네는 "입이 가벼워 탈이야, 그게 뭐 큰 재산이라고 ..." 하며 핀잔을 준다. 그래도 젊어 보이는 분이 종로 3가 근처로 자주 놀러 간다며 그곳에 노닐고 있는 나이든 색시들 이야기를 하며 너스레를 떤다. 왼쪽에 계시는 나이든 노인(?)이 "별로 행세도 못 하는 주제에 입만 까갔구서..." 하며 빈정 거린다. 내가 "어르신네는요?" 하니 "나야 아직은..." 하며 겸연쩍게 웃으신다. 정말 이 노인이 89세가 맞단 말인가. 부천역에 도착하니 좀 젊어 보이는 분이 내리며 "형님, 잘 가슈"하며 내린다. 이제 나이든 분과 단둘이 경노석에 앉아 간다. 구로역 까지 많던 승객들이 이쯤에 오니 많이 내리고 드문드문 앚아있다. 그제서야 나이든 노인이 자기 이야기를 슬슬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8남매, 4남4녀를 두었는데 큰 아들이 69세고 막내딸이 42이란다. 젊을때 일본 사람 목수 밑에서 일을 잘 배워 목수일을 지금 까지 해오고 있다며 어제 까지 의정부에서 목수일을 해 주고 임금 받아 집으로 가는 길이란다. 한때는 버스 운전도 했다며 내 손을 잡는 팔힘이 젊은이 못지않아 보인다. 자식들 혼인을 시키며 가구는 손수 다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자식들은 모두 자수성가 하여 걱정없이 잘 살고 있다고 한다. 40년전에 아내가 죽어 지금껏 혼자 살아왔다고 하며 지금은 제대한 손자와 산다고 한다. 먼저 부천에서 내렸던 젊어 보이는 노인은 한때 여자와 같이 살았다고 한다. 석달쯤 살다가 그 여자가 통장에 들어있던 돈 3,000만원을 빼내어 달아났다고 하며 전화를 걸어 보지만 받지 않는다고 하며 그 동안 살아줬던 정에 포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참! 비싼 여자하고 살었지..." 하시며 너털웃음을 웃는다. 동인천 까지 간다는 나이든 노인은 고급 목수일을 하여 남들보다 더 많은 임금도 받었고 잘 관리하여 손수 지은 상가 건물을 세놓고 있어 수입이 짭짤하단다. 그러면서 지금도 옛 솜씨를 잊지않은 고객들이 찾아주어 목수일과 미장, 파이프 공사 일까지 해 주고 일당을 받아 용돈으로 쓰고도 남아 손자에게도 좀 준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나이에 불러 주는것만 해도 고마워 젊은이 일당 같이 많이는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이 그런 궂은일이나 날일도 하지 않기에 자기에게 돌아오는 일들이 많아 진다고 한다. 한때(50대때) 전국을 다니며 사슴 농장을 스무채 넘게 지어줬다고 한다. 그때 사슴 농장에서 막걸리 사발로 몇번 얻어 마셨던 녹혈 때문인지 요즘도 겨울에 내복을 입지 않고 다닌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피부가 아직도 검버섯이 많이 보이지 않고 맑아 보인다. 눈에 빛이 나는게 목소리도 카랑카랑 하게 들린다. 동인천역이 가까워 오자 나에게 몇마디 이야기 하신다. "젊은이(?) 나이 들드래도 일할수 있을때 까지 일하시오. 일손 놓으면 지루해서 금방 늙고 일찍 간다오" 또 "나이 들기전에 몸관리 잘 해놓으시오, 나이들어 병들기 시작하면 잡을수가 없어요. 자식 보기에도 추해 보이고..." 하시면서 큰손으로 내 작은 손을 덥석 잡아 흔든다. 손바닥이 거칠게 느껴지고 연륜을 감지 할 수 있다. 그 큼직막한 손바닥에 든 내 부드러운 손이 더욱 작아 보이고 부끄러워 진다. 차창 밖으로 군살 하나없이 훤칠한 키에 당당히 걸어가는 모습, 허리가 전혀 굽지 않고 꼿꼿이 걷는 모습에서 건강한 노인의 모습을 발견한다. 어찌 89세의 노인이라 할수 있겠나... 어르신 덕분에 나 오늘 젊은이 됐다. 어른신, 오래오래 사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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