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차마고도

배낭여행에 숨은 에피소드

master 42 2007. 7. 5. 00:05

 용승의 계단식 논

걸어서 5시간, 말타고 6시간 걸려서 찾아온 운남성 위펑마을에서 
첫날밤을 보낸다.
30촉 백열등이 그네를 타지는 않지만 밝지는 않아 닭잡아 먹고 
포식했기에 밤 8시가 좀금 넘어 일찍 잠을 청해 본다.
이불속으로 들어가 보니 좀 서늘해서 빈 옆방에서 이불 한채씩을 
더 갖고와 덮고 잔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고소증세라 그런지 소변이 자주 마려워 
잠자다 일어나 후랏시를 켜고 변소를 갈려고 나서니 낮에 봐뒀던 
변소길이 너무 멀어 그만 주저 앉는다.
아랫층으로 내려가서 뒷건물 후미진곳에 있으니 날씨도 설렁하여 
더욱 가기 싫다.
어린 아이들 같으면 엄마 앞세우고 갈수 있으련만...
주위를 두리번 거려 뭔가를 찾아보니 물이 조금 남은 생수 큰 페트병이
눈에 들어와 얼른 물을 비우고 실례를 한다.
그 생수병이 이틀밤 나의 요강으로 사용된다.
역시 맥가이버가 따로 없다니까...순발력이 문제야...ㅎㅎㅎ

위펑 게스트 하우스 주인 여자

 

위펑마을에 도착하여 주인 아줌마 한테 마당에 노닐고 있는 닭한마리를 잡아 주는 값을 물으니 역시 들은데로 100元(13,000원)이란다. 값을 깍지도 않고 요리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이 아줌마 큰 닭을 잡아와 내옆으로 오더니 목아지를 좀 비틀어 달란다. 어릴때 어머님이나 형수님이 닭목아지 비틀어 부엌칼로 내리쳐 잡는걸 보기는 했지만 자신이 없어 손사레를 흔든다. 참, 아줌마 한국에서 우리들 이후 세대는 닭을 먹을줄은 알지만 잡을 줄은 모른다오.

 

파키스탄 출장 다녀오고 열흘만에 배낭여행 떠났기에 C형이 조사하여 간추려 준 계획서도 읽어보지 않았다. 모두들 등산화를 신고 왔는데 나만 운동화 차림이다. 호도협 트랙킹을 위하여 하는수 없이 리짱에서 100元주고 등산화 한켜레를 산다. 엄청 싸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품질이 엉망이다. 비가 오니 빗물이 젖어 들어오고, 신발과 발이 따로 놀고, 신끈을 조여놔도 얼마간 걷고나면 슬슬 풀려 나오고, 땀이 밖으로 배출되지 않으니 발이 땀에 젖는다. 집에 두고온 고어텍스 등산화가 몹씨 그리워 진다.

 

중국 도착하니 비가 오기 시작한다. 얼른 30元 주고 3단 우산 하나를 산다. 비오는 일주일 내내 쓰고 다니고 호도협 트랙킹때 이 우산이 비바람을 막아 준다. 바람에 우산이 뒤집혀도 끄덕도 않고 생생해서 집에까지 갖고와 이번 장마에 생광스럽게 잘 쓰고 다닌다. 호도협 트랙킹 출발할때 큰배낭을 맡겨두었던 제임스 게스트 하우스에서 버려진 비닐을 삼등분하여 챙겨온것이 중간에 비바람을 만나 세사람의 배낭을 보호해 준다. 방안에 딩굴던 비닐봉지가 호도협 트랙킹때 카메라에 덮어씌워 비를 맞지않게 한다. 역시 이 세상에는 쓸모없는것은 없다는게 증면된다.

호도협, 옥룡설산이 건너편

 

중디엔(中甸)에서 7시간 걸려 도착한 비래서(飛來寺 해발 3,400m)에서 하룻밤을 자고 낙석으로 도로가 막혀 하는수 없이 걸어서 시당마을 (해발 2,200m)로 걸어서 내려간다. 그런데 같이 간 박사장이 중간에서 다리가 아프다며 더 걸어가지 못하겠다며 주저 앉는다. 2년전 부터 등산을 하여 몸을 가꾸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대구 앞산 을 딱 한번 올라가 봤다고 한다. 그러니 다리가 부실하여 더 걷지를 못하겠단다.

 

지나가던 장족(藏族) 현지인이 엎고 가겠다며 50元을 달란다. 업어보더니 무거우니 70元원을 달라고 하여 업고 내려간다. 장족들은 남녀가 언제나 짐질 준비로 튼튼한 끈을 갖고 다닌다. 급경사 좁은길을 내려 오는데 왼쪽 급경사 아래로 란차강을 내려다 보니 나도 모르게 겁이 날정도다. 그런데 박사장을 업고가는 장족은 잘도 내려간다. 시당마을에서 하룻밤을 자고 위펑마을로 가기위하여 말을 타러 가는데 마부들이 무거운 배낭을 지고 갈수 없다며 더 돈을 달라고 한다. 그래서 간단한 짐을 꾸리며 큰 배낭은 시당 게스트하우스에 맡겨둔다. 그러나 갑작스레 작은 배낭을 꾸리느라 C형은 필림을 빠트리고, 난 카메라 바테리 한개만 챙기고 떠난다. 처음 타는 말이라 기분도 들떠있고, 경치구경하며 사진 찍으며 기분 좋게 위펑에 도착하고서야 그걸 알았으니 때는 늦었다. C형은 마음놓고 푸근하게 사진 찍지 못하고 난 바테리 용량의 눈금 표식이 사라질가봐 마음 조리며 기술을 부려가며 사진을 찍는다.

 

시당마을 게스트 하우스 주인 호도협 빗속 트랙킹과 오지 위펑마을을 다녀온 보너스로 휴식겸해서 계림으로 날라간다. 계단식 논밭을 구경하러 용승으로 가서 급경사길을 올라 가는데 이곳에서도 박사장은 걸어 올라갈 수 없단다. 하는수없이 가마꾼을 불러 게스트 하우스 까지 올라간다. 박사장만 남겨두고 C형과 전망대 까지 사진 찍으러 다녀오니 박사장이 죽을 먹고 있다. 중국말을 전혀 할줄 모르는 박사장이 어떻게 죽을 시켜 먹었는지 궁금하여 물으니.... 종이에 냄비를 그리고 냄비안에 물수(水)자와 쌀미(米)자를 쓰고, 냄비밑에 불화(火)자를 써서 보이니 금방 알았다고 하더니 죽을 쑤어 오더라며 너털 웃음을 웃는다. 뭐 말이 별거냐...통하면 되는거지...

 용승의 계단식 논

이튿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계단식 논을 찍으러 전망대로 올라가니 많은 중국 찍사들이 벌써 삼각대에 카메라 걸어놓고 대기중이다. 걸어놓은 카메라와 배낭에 질머지고온 장비값이 1,000만원은 넘을성 싶어 기만 죽는다. 에라! 이참에 마음 바꾸어 한국 돌아가면 카메라 장비 부터 바꿔... 한동안 귀국하여 펌프질 당한 마음을 달래느라 힘들어 한다. 아직도 난 고물 카메라 메고 단니다.

 용승 마을

계림에서 양수오 까지 이강을 따라 크루즈 여행의 호강도 누려본다. 배안에서 맞은편에 앉은 부부가 이스라엘에서 왔다며 대구를 잘알고 있다. 부인이 대한 중석에서 사장 비서로 오래 근무를 했다고 하며 반가워 한다. 이튿날 양수오에서 자전거를 빌려 농촌마을로 트랙킹을 나갔는데 점심때가 되어 시골 농가의 조그마한 가게에서 점심을 시켜먹으며 맥주를 주문하니 주인 아줌마의 시아버지 되는 나이든 분이 자전거를 타고 가서 맥주 3병을 사갖고온다. 나중에 계산 할려니 10元을 받는다. 보통 시내에서 5元인데 촌노인 한테 완전히 바가지를 섰다.

계림의 리강

배낭여행 다니며 뒤에 숨은 일들, 웃기는 일들이 많다. 택시 타고 내릴때 생각 한번 잘못으로 요금의 열배를 지불하고 내린일, 새벽같이 호텔을 나서며 돈지갑을 이불속에 흘리고 나온일, 식당에서 주문한 식사가 기대했던것 보다 못한것은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다. 치솔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 치솔갖고 오지 않았다며 걱정하는일, 중요한 물건을 찾기위해 온 배낭을 다 뒤지는 일들, 정작 찾고나면 아주 가까운곳에서 발견한다.

계림의 양수오 

그러나 생각보다는 더 횡재하는 일들도 있다. 몽골 고비사막에서 양 한마리를 25,000원주고 잡아 동네 사람들과 같이 먹은일, 운남성 쿤밍 로가(老街) 식당가에서 싸고 맛있게 먹은 양고기 수육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안에 침이 맴돈다. 배낭여행의 진가는 자유로움과 여유스러움이다. 친구의 말대로 "꽃잎이 푸대접하면 잎에서 자고가지" 하는 마음으로 언제나 푸근한 일정을 즐긴다. 그러나 인터넷과 론니프레닛 가이드 북을 찾아 자료를 수집하는일 부터 배낭여행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여행자들의 마음에는 언제나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다. 아직도 이 세상은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다. 그러나 그만큼 나이도 자꾸 많아진다. 언제쯤 여행의 끝자락이 보일런지...

시당마을 사람들

 위펑마을

 시당마을 사원

 비오는 시장 거리의 노천 식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