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자네 포장집 이야기

내 여자 친구

master 42 2004. 11. 5. 08:29




난 내 국민학교 동창이란 이름으로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윤자라고 하며 내가 해방후 50여년을 살았던 동네에서 포장집을 하고 있다.
큰길가에 위치할 그런 술집도 아니고해서 뒷길 소방도로에 있고 그것도 좀은
길입구에서 처져 있어서 장사가 잘 되지 않을 목에 있다.
그걸 알수있는건 그 옆집들은 새로이 문을 열고는 서너달을 체우지 못하고
문을 닫으니 그녀가 하고있는 포장집인들 좋은 목이라고는 할수 없는곳이다.
그런데 어떻게된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집은 항상 손님으로 북적거린다.
아침부터 찾아와 해장으로 라면을 끓여 달라는 사람,해장술과 밤새 끓여놓은
국물을 훌훌 들여 마시며 연신 땀을 훔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드나든다.

 

포장술집이라고 차려놓은게 8년여 되었는데 윤자는 실내 장식한번 그럴듯하게
꾸며 놓은적이 없다.
벽색이 탈색될때 쯤이면 수성페인트로 깨끗이 칠을 해 놓는다.
그러나 싱싱하게 크는 난 화분이며 어항은 항상 깔끔이 잘 정돈되었다.
몇년전 내 회갑때 사돈이 보내주었던 난 화분이 어쩐지 우리집에서 비실비실하게
크길래 지난 정월에 윤자한테 갖다주면서 잘 키워 달라고 했더니 지난 초여름에 꽃망울이
맺었다해서 가보니 작년과 같은 크기로 맺었길래 디카로 담아 왔다.

또 변소하나만은 밥알을 흘렸다가 주워 먹어도 될 만큼 깨끗이 해 놓는다.
어느 술주정꾼이라도 그 변소에 들어갔다가는 함부로 오조준 해서 볼일을
볼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비칠 정도로 깨끗하다.
그러니 만들어 내 오는 공짜반찬(일명:쯔끼 다시) 궁중요리 뺨치듯 깔끔하기
로 정평이 나있어서 아무도 안주 타령을 하는 사람이 없다.

 

아침에 해장술꾼들이 다녀가면 그 다음 10시 가까이 조기 축구팀들이 들이 닥친다.
막걸리로 시작해서 간단한 아침을 이곳 안주로 떼운다.
50을 갖넘긴 직장이 없는 여유로운 자유인들이라 이야기도 수더분하다.
항상 얼굴엔 막걸리 마시고 입술에 술방울이 남아 있듯이 웃음이헤번져 있고
말끝은 언제나 너털 웃음으로 이어진다.
정치 이야기며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로 이어가노라면 오전을 거의 보내고 일어선다.
그뒤를 이어 큰길가 사무실 빌딩에서 점심을 위탁해 먹는 사원들이 여나므명 들어온다.


이들은 근처에 근무하는 사무원들인데 어느날 주인의 깔끔한 조리와 반찬,밥맛을 보고
그때 부터 하기 싫어하는 주인을 달래서 점심을 주문해 놓고 월정으로 점심을 먹는 팀이다.
이들 중에는 고급 간부도 있어서 어떤때는 해장술이라하며 술을 반주로 들일때도 있다.
그러나 주인인 윤자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오는 주문 점심을 싫어해서 마지 못해서 하는것 같다.
그들이 항상 오기에 자기 볼일로 문걸어 잠그고 나갈수 없다는 이유다.
또 반찬을 매일 바꿔가며 신경써서 해야 하기에 스트레스가 된다고 한다.

 

점심팀이 나가고 나서 어느정도 설겆이를 하고 한허리 돌리며 쉬게된다.
이때가 하루 일과중 가장 한가한 시간인것 같다.
난 종종 시내에서 일보고 돌아오는중에 이때 들려보면 유선방송을 켜놓고
못다본 일일 연속극을 보고 있다.
3시가 되기전에 동네 시계방이나 복덕방에서 술시가 되었다며 소주나 맥주로
목을 축이로 들어온다.
모두가 동네 사람들이고 어떤때는 서로 금전대차관계도 있고해서 매우 친한 사이다.
빈자리도 있지만 다음올 손님들을 배려해서 같은 한자리에 너댓이 둘러앉아  각자
기호에 맞는 술을 마신다.   막걸리,소주,맥주...다양하다.


안주도 시키지 않고 주인이 가져다주는 공짜 안주로 한시간여를 보내고
다시 자기들 업무로 돌아간다.
술값이라야 술값만 받으니 손님에게는 부담이 되지 않는다.
항상 안주는 무료다.
아마 그래서 아침부터 이집이 손님의 발길이 줄을 잊는것 같다.

3시가 넘으면 증권회사가 폐장을 하고 오는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 온다.
테이불 2개는 족히 찾이한다.
이를 윤자는 증권회사 손님이라한다.
30대로 부터 70대 까지 서로 어울려 그날의 손익을 짚어가며 또 각자의 기호데로
술을 시킨다. 물론 이때도 안주는 무료다.


교장으로 정년퇴직했다는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은 한때는 김대중 대통령의 열렬한 신봉자라
주위 사람들로 부터 눈흘김도 받었으나 아랑곳 하지 않고 초지일관하여 목청을 돋군다.
그 손님중에 또 50중반의 여자가 두어분 있는데 한 아주머니는 증권손님중에
40대의 청년을 좋아해서 항상 옆에끼고 술을 노골적으로 마시러 온다.
와서는 술을따르는건 물론이고 안주를 집어 주고,어떤때는 옷가지도 사준다고 한다.
물론 남편과 자식을 두고사는 가정 주부다.
그녀가 없을때는 모두들 빈정대는 이야기를 흘리지만 워낙 여자가 대가 강해서
어느누구도 함부로 흉보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이 손님들만 오면 포장집은 시끌벅적이다.
교장선생님은 목소리가 젊은이 못지 않아서 모두가 기차화통을 삶아먹었느냐고 힐난한다.
나도 이때 여러번 그들과 어울렸기에 모두를 잘 안다.
내가 가면 교장 선생님은 이집 주인 친구가 왔다고 하면서 안주를 좋은걸로 가져오라고 너스레를 푼다.


이팀이 나갈때쯤이되면 오후 6시가 훨씬 넘는다.
연이어 퇴근 손님들이 들이닥치고 이때부터 술판이 벌어지고 자기들 회사의
상사를 안주삼아 이야기가 벌어진다.
젊은 동료아가씨들도 따라와 처음에는 뭐 이런 술집에 데려오느냐하는 식으로
못마땅한 눈흘김도 있으나 곧이어 차려나오는 음식을 보고 마음을 풀게된다.
9시경 까지 이런 손님으로 북적대다가 10시 이후가 되면 근처 큰길쪽에 있는
나이트에서 손님들이 입가심이라며 들린다.


이때는 으례 여자들을 동반하고 오는 경우가 많다.
이손님들은 어느정도 술에 취해있어서,또 동반 여자들을 홀겨볼려는 샘인지는
모르지만 대체로 안주를 주문한다.
아마 윤자는 이때 목돈을 안주로 해서 큰돈(?)을 만져 보는게 아닌가 한다.

12시가 넘어 손님들이 다가고 나면 문을닫아걸고 하루 번돈을 계산하고
잠자리에 들던지 아들집으로 간다.


얼마전에 서울에서 장사하는 딸이 와서 급전을 마련해 달라고 엄마를 조르기에
윤자가 내한테 돈을 빌려 달라는 전화가 왔다.
두모녀가 내딸 시집갈때 서울까지 따라와서 버스칸에서 혼주 식구와 다름없이
손님들을 접대해주었기에 나도 서스름 없이 빌려 주었다.
요즈음도 몇번 돈거래도 있었으나 항상 일주일 이내에 꼭 갚는다.
50초에 의사인 남편을 사별하고 혼자 살려니 우울증이 와서 몸이 자꾸 뚱뚱해지던차에
친구가 하던 이 포장집을 헐값에 떠맡아 지금까지 8년여를 해오고 있다.

 

돈이 그리 궁색하지않으니 손님에게 빡빡하게 대하지 않아 푸근해서 좋다고들 한다.
손맛이 있어 만드는 반찬마다 맛이있다고들 하고, 그 안주 조차도 돈을 받지않고
그냥 차려주니 그 안주만으로도 술을 마실수 있어서 술값이 싸서 좋다고들 하며
동네에서 부터 소문이 나서 항상 손님들이 북적 댄다.
그렇다고 손님이 없다고 전화질해대며 오라고 하지 않으니 부담도 없다.

나도 볼일보고 돌아올때나 퇴근길에 한번씩 들려 보면 모두가 아는 손님들이라
한자리 끼워앉아서 이야기로 웃다가 돌아온다.


어떨때 지나다가 맥주 한병을 마시고 나오면서 돈을 줄려고 하면 나중에 주라고 하며 물리친다.
그래서 나도 친구와 여러병을 먹고 나서 계산할때면 좀 보태어 계산해 주며
나머지는 나중에 와서 먹지 한다.

윤자는 생활이 어려워 포장집을 하지않고 가만히 놀기가 심심해서 꿈직여 볼려고
하다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하면서 매일 손님들과 부데끼는게 재미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세월가느걸 잊어버린단다.


몇년전에 윤자 친정 어머니가 돌아가셨을때 국민학교 동기들이 많이 문상을
해 주었고 장지까지 가준 일을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또 2년전에 언니가 죽었을때도 윤자가 모든 장례를 다 거두어 주었다.
윤자는 두째딸이면서 아들형제가 없어서 맏아들 노릇까지 하고 있다.
지금은 내가 그동네를 떠나 좀 멀리 살고 있어서 자주는 가보지 못하지만
혹시 시간이 있어서 들리면 무척 반가워 한다.

같이 커온 동무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