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자네 포장집 이야기

윤자네 포장집-후배 차(車)씨 이야기

master 42 2005. 11. 13. 00:38

 

얼마전에 내 여자 친구 윤자네 포장집 이야기를 이곳에 옮겨 본적이 있다. 오늘은 그곳에 단골 손님으로 드나드는 차(車)씨 이야기를 올려 볼가 한다. 차씨는 나를 항상 선배님이라고 부른다. 그의 말대로 라면 확인할길은 없지만 내가 차씨의 3년 선배가 된다. 50년대말에 K중학을 졸업했다고 하며, 방고개에서 학교까지 항상 버스를 타고 다녔다 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그의 집은 그 당시 엄청 잘 살었던 집이다. 아버지가 큰 공장을 했기에 걱정없이 중학교를 다니고 외동아들로 귀하게 컷다고 한다. 아마 지금의 무력한 그의 행색으로 봐서 그때 커 나오는 과정에서 나태한 생활을 잉태하고 있었지 않았는가 싶다. 그에게 그후 졸업한 고등학교와 대학을 물을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 생활을 하고 다녔다. 그는 남자들이 흔히 자랑하는 젊었을때 잘 나갔던 이야기는 잘 하지를 않는다. 그냥 현실에 급급해서 살아가는것 같다. 윤자네 포장집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최근 10년 이내에 만났던 사람들이라 그의 오래전 내력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포장집 근처에 빈 나대지를 빌려 주차장을 하면서 어머님을 뫼시고 가족과 같이 살다가 그 마저도 게으른 천성 때문에 관리를 잘 하지않아 다른 사람손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주차장을 운영할때도 매일같이 오후만 되면 윤자네 포장집에 와서 막걸리나 소주를 마시고 단골 손님과 노닥거리다가 집나간 아들이 오지 않아 노모가 윤자네 집까지 아들을 찾으러 나오게 한다. 주차 할려는 손님들은 오는데 노모나 부인의 힘으로는 되지 않을 일들이 생겨 차씨를 찾으면 없기에 이 포장집으로 찾아오면 틀림없이 술잔을 벗하며 노닥거리고 있다. 노모가 아들을 찾아오면 차씨는 착한 아들이 되어 어머니와 같이 주차장으로 간다. 어떤때 술판이 무르익으면 곧 간다며 노모를 돌려 보내고 그대로 주저앉아 술판에 빠진다. 항상 만나는 술 꾼들과 하는 이야기는 뻔하여 별로 영양가 없는 내용이다. 남들이 말하기로 사람이 좋아 지나가는 가마귀도 붙잡고 술한잔 권할 정도다. 그러니 윤자네 집에는 항상 외상 술값이 노트에 지워질 날이 없이 연속으로 오른다. 한달로 주차하는 동네 손님이 목돈을 주는날 외상값의 일부를 갚지만 저녁에 돌아가면 아내의 바가지 극성에 시달리기도 한단다. 그러던 차씨가 IMF 이듬해에는 주차장을 넘기고 가을 부터 초봄까지 산에 나무 간벌하러 다니는걸 보았다. 막노동 일선으로 나서게 되니 해거름해서 퇴근하면 현금으로 받은 일당으로 또 윤자네 집에서 술잔으로 피로를 달래며 동네 사람들과 해롱거린다.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은지 했던 이야기 또 하며 술잔을 돌린다. 차씨는 언성이 높지 않아 이야기 할때는 조용조용하여 남들과 시비하는 일은 없다. 또 천성이 그리 강하지 못하여 옆자리에서 시비가 일어나 큰소리 오가면 얼른 그 자리를 피해 어디로 갔는지 찾을수 없다. 산에 간벌하는 일도 한철로 끝이나니 봄철부터 아파트 공사판에서 일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다가 몸이 약한 차씨가 막노동이 힘에 겨워 그 공사판에서 경비직으로 옮겼다. 원래 부터 천성이 강하지 못하여 근무중에 막일꾼들과 중참 시간에 막걸리를 마시고 졸다가 간부에게 발각되어 그 직장 마저 튕겨져 나오게 된다. 두어해 전에 윤자네 집에 들려 요즘 차씨가 않보이는데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더니 한동안 오지 않는단다. 그러다가 지난 봄, 오후 늦으막해서 그곳에 들려더니 술잔을 들고 있던 차씨가 얼른 술잔을 내려 놓으며 "선배님, 오랫 만입니다" 하며 일어나 같이 자리 하자고 해서 동네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서 낮술을 마신적이 있다. 아파트에서 24시간 경비를 한다며 하루를 쉬기에 오랫만에 이곳에 나왔다고 한다. 얼굴이 그전보다 더 못해져 보였다. 수주일전에 윤자가 돈을 약간 빌려 달래서 빌려 주었더니 몇일전 그 돈을 준다기에 들려서 맥주 한잔 하다가 요즘 차씨가 종종 오느냐고 물었더니 오지 않은지 여러달 되었다고 한다. 상속 받았던 재산으로 변변한 직장 한번 다닌적 없이 살아왔으니 물려받은 재산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젊을때 부터 처자식을 고생 시켰을건 보지 않아도 뻔한것 같다. 그래도 마음만은 아직도 부자인지 우리들 앞에서는 큰 걱정을 하지 않고, 돈만 좀 생기면 동료들이나 주위 사람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즐긴다. 요즘은 다니던 아파트 경비직도 그만두고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단다. 그의 노모는 지난 초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