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자네 포장집 이야기

윤자네집 손님 윤목수, 윤사장

master 42 2005. 12. 11. 19:56
 
내 국민학교 여자 동창생 친구 윤자 이야기는 오래전 부터 이곳에 오르락 거려 
잘 알려진 이야기고 또 그 친구가 운영하고 있는 간이 술집 포장집을 드나드는 
손님들 이야기를 몇가지 옮겨 온 터라 오늘도 그 중의 이야기를 해 볼가 한다.
오늘은 이곳 윤자네 포장집에 드나드는 손님중에 50대 중반의 윤목수와 그의 
친구 윤사장의 이야기다.
두 분은 같은 파평 윤씨로 대구에서 가까운곳에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마을에서 
나이는 같으나 숙질간으로 커왔다.
윤목수가 아저씨고 윤사장은 조카 사이지만 아래 윗 집을 두고 커왔기에 그런 
촌수 관계는 모르고 어린 시절을 살아왔다.
철이 들고서 부터 숙질관계를 알았지만 친구라는 사이가 더욱 두사람을 이어줬다.
이곳 윤자네 집에서 우연히 만났지만 두사람이 사는 마을이 한고개 넘어인 내 
고향과 가까워 언제나 나는 형님으로 통한다.
지금은 어릴때 부터 좀은 부유하게(촌부자 별거 아니지만)살았던 윤사장이 동네에서 
초옥을 허물고 새롭게 집을 지어 매운탕집을 열어 돈도 꽤나 벌어 부인과 처남한테 
맡겨 두고 거들먹 거리며 한량으로 돌아다닌다.
윤목수는 크면서 좀 어렵게 커왔고, 또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서 일찍 부터 목수
밑을 따라 다니며 어께너머로 배운 기술로 지금 까지 공사판 일들을 하며 지내나
일 솜씨가 맵싸고 업종을 고급화 시켜 실내 인테리어 일을 하고, 노는 날이 없이 
일하니 일년 수입이 꽤나 되는것 같다.
윤사장은 50년대 어릴때 동네 친구들과 장난치다 팔을 비틀려 다친 팔이 의료시설이
부족하고, 교통편이 열악했기에 제때에 치료를 못하여 한쪽 팔이 바르게 자라지 못한 
일명 팔병신으로 커왔기에 장가가서 한동안도 그 열등감에 문제아로 자랐다.
윤목수 또한 집안이 넉넉치 못하여 중학교만 졸업하고 빈둥거리며 놀다가 군대를 
마치고 돌아와 집안 어른 밑에서 목수일을 배우며 총각시절을 보냈고 또 결혼을 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결혼한 윤사장은 그의 부인이 시집와 새 살림을 차리고 보니 
먹고 살기가 급급하여 울기도 많이 했다고 한다.
살던 동네가 참외, 수박이 많이 나기에 부인이 팔걷어 붙이고 그걸 받아 대구로 
나와서 팔고 40여리 밤길을 걸어 집까지 돌아오는 억척을 부렸다고 한다.
결혼후 얼마간 열등감에 칠락팔락 돌아다니던 남편도 정신을 차리고 참외, 수박 
장사에 재미를 붙여 한여름 장사에서 돈을 벌더니 가을 부터는 여럿 농산물을 거래
하며 눈을 밝게 뜨더니 여러해 농산물 거래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국내 경제가 성장하고 안정을 찾은 80년대 중반에 고향 옛집을 허물고 
매운탕집을 열어 장사를 시작했다.
대구 시내와 가까우니 자가용 붐을 타고 처음 부터 음식점이 번창하기 시작하였다.
남의손 빌리지 않고 부부가 직접하니 돈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하였다.
또 부동산 붐이 일어나니 윤사장은 부동산을 사고 팔고 중개하여 꽤나 돈을 많이 모았다.
한때는 식당은 부업이고 부동산업이 본업같이 되었다고 한다.
타고 다니는 차도 새차가 나올때 마다 갈아치워 지금은 3500CC급의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
또 식당일도 아내와 처남에게 맡기고 이고 저곳으로 놀러나 다니고 지방 유지 랍시고 
이권 사업을 찾아 다닌다고 한다.
목수일을 배운 윤목수는 건설붐을 타고 좋다는 건설회사를 옮겨 가며 일을 했기에 
한때는 꽤나 돈을 모았다고 한다.
또 한때는 독립하여 인력공급회사를 차려 목수, 미장 일꾼들을 건설회사로 공급하여 
꽤나 거들먹 거리며 돈 바람을 뿌리며 돌아다녔다고도 한다.
그러나 건설공사는 경기에 민감하여 흥망이 들쭉날쭉 하여 나중에는 빈 털털이가 되어
그 자신도 망치를 들고 건설공사 현장을 드나드는 목수가 됐다.
윤목수는 아내가 기독교 종파인 XXXXXX에 빠져들어 집안일을 돌보지 않고 맨날 교회일
에만 매달려 살고, 유교 집안인 윤목수 집안에서 제사는 아예 지내지 않고 참사도 
않으니 남편인 윤목수만 집안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하는수 없이 장남인 윤목수가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대구로 나와 셋방을 얻어 살며
자주 부모가 살고있는 집으로 드나든다.
농사일을 하시는 부모를 도와 목수일 간간이 농시일도 거드니 아내가 야속하게 느껴 
질때도 있었다. 집안 어른들이 이혼을 하라고 하나 쥐는 잡지만 독은 깰수 없다는 마음
으로 지금껏 살고있다 한다.
몇년전 윤목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가니 그의 부인은 상복조차 입지않고 말뚱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얼마전에 윤자네 집엘 들러서 술한잔 하면서 윤목수와 윤사장 이야기를 물으니 윤사장은
자주 오지 않고 윤목수만 간간히 들린다고 한다.
윤목수 집이 윤자네 집과 가까워 전화를 거니 금방 찾아와 만났다.
만나자 말자 "형님, 요새 우째 지내 십니꺼? 한번 찾아뵙지도 못하고 미안 합니더"다.
둘이서 낮술로 맥주 여러병을 비웠다.
윤자네 집에 모인 사람들과 권커니 자커니 하며 술호기를 부리고 집에 돌아올때는 
대리운전 시켜 돌아오니 대낮 부터 대리운전 시키는 사람은 잘 없다고 운전기사가 
웃으며 이야기 한다.
어제 친구들과 윤사장 매운탕집엘 가서 "윤사장 요즘 잘 계시는가"라고 처남한테
물으니 " 예, 조금전에 뒷집 아저씨와 같이 나갔심니더" 라고 한다.
뒷집 아저씨는 윤목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의좋은 숙질간이고 친구 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