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자네 포장집 이야기

요즘 윤자는 힘들어 한다.

master 42 2006. 5. 25. 00:35

백두대간 종주 구간-태백산 정상에서

 

오늘 오랫만에 국민학교 동창 친구인 윤자네 포장집엘 들렀다. 지난번 배낭여행 다녀오고 바이어도 만났고 또 오늘 L/C까지 받었던 터라 마음 느긋하게 일찍 퇴근하던길에 들렀다. 오후 5시가 넘어서 그런지 증권회사에서 단골로 오던 손님들은보이지 않고 출출한 배를 채우러 오던 중참파 동네 단골들도 한사람 보이지 않는다. 낮선 나이든 아저씨 세분이 앉아있다. 들어가니 손녀가 쪼로록 튀어 나오며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한다. 며느리가 우울증에 걸려 병원에 입원 하는 바람에 낮에는 이곳에 데리고 와서 놀아주고 있다. 그 전에도 손녀와 종종 놀아주는 일을 보았기에 그리 어색하지 않게 본다. 자리잡고 앉으니 윤자가 "왜, 요즘 바뻤나? 오랫만이네." 하며 내가 즐겨 마시는 맥주를 한병 내어 놓는다. 목이 컬컬 하던참에 맥주 한잔을 벌컥 거리며 마시는데 문이 열리며 자주 오던 권씨가 들어온다. 권씨는 그리멀지 않는 동네 아파트에서 청소를 해 주며 용돈을 소일삼아 번다고 한다. 수인사를 나누고 탁자에 마주앉아 맥주 한병을 채 다마시기도 전에 김부장과 신씨 아줌마가 들어온다. 김부장은 근처 빌딩에서 경비 부장으로 일하고 신씨 아줌마는 빌딩 청소 일용직 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오래전 부터 눈이 맞아 거의 매일 같이 이곳에 들러 입가심을 하고 간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한번 써 볼까 한다. 한 탁자에 네사람이 앉아 각자 취향데로 술을 마신다. 나는 맥주를 마시고 권씨는 먼저 내가 권해주던 맥주를 마시고 나서 즐기는 소주 를 시켜 마시고, 김부장과 신씨 아줌마는 막걸리를 마신다. 한탁자 세식구에 세가지 종류의 술이 올라와 있다. 그러나 안주는 윤자가 무료로 갖다주는 땅콩, 부추전, 잔새우 튀김과 김치다. 아무도 안주에 대해서는 불평도 없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 돈않내는 무료 안주니까. 그렇다고 안주를 많이 먹지도 않는다. 나만이 땅콩 껍질을 잿털이에 까며 날름날름 즐겨 까 먹을 뿐이다. 박근혜 대표 이야기와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의 이야기들을 하고 지역에 출마한 광역 자치단체장의 선거 이야기를 안주삼아 이야기 한다. 그렇다고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냥 마주앉아 있으니 안주거리가 마땅치를 않아 이야기 할 따름이다. 깁부장과 신씨 아줌마가 갈때가 있다며 먼저 일어서고 권씨와 대작하니 윤자가 내 옆에 와서 앉는다. 내가 서울 사는 딸 안부를 물으며 요즘 어떠냐 하니 한숨을 내쉬며 "참, 쉬운게 없네"한다. 작년에 하던 옷가게를 팔았는데 막대금으로 받었던 어음이 부도가 나서 지금 그 돈 받으러 일본에 가 있다고 한다. 지금 하고있는 찜질방 일은 친구한테 맡겨 두고 갔단다. 그러면서 자기 가계(家系)에 오래전에 내렸던 신기(神氣)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윤자 어머니가 젊었을때 신기가 있었는데 받지를 않고 지냈는데 윤자가 결혼후 아이낳고 살다가 어느날 자기한테 신기가 왔다고 한다. 윤자도 왔던 신기를 거부하고 받지 않았다고 한다. 몇년전 부터 시집간 딸한테 신기가 왔는지 자주 아프고 하던 일들이 잘되지 않고 또 며느리 한테 우울증이 와서 어디가서 물어보니 딸과 며느리 한테 신기가 왔다고 하드란다. 윤자는 오래전에 자기한테 내렸던 신기를 받지않아 자식들 한테 까지 내렸다고 하며 상당히 힘들어 한다. 그러면서 "어디 영감 하나 얻어 딸아이 걱정만이라도 덜게 해 준다면 팔자라도 한번 바꿔 보고 싶다"라고 한다. 나이 마흔이 다된 딸이 몇년전 이혼하고 혼자서 청담동에서 옷가게를 하다가 잘 되지 않아 작년에 팔아넘기고 큰 찜질방에 보증금 넣고 매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며느리의 우울증으로 인해 아들이 힘들어 하고 서울 사는 딸아이 힘들게 사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낙천적인 윤자도 요즘들어 매우 힘들어 한단다. 오죽하면 나이든 영감 뒷 수발이나 해주고 가정사 편안해 볼려는 그 마음 알만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것도 아닌것 같아 한마디 충고 해 주었다. "이제 딸이나, 아들 가정사에 신경 쓰지 마라. 다 큰 자식이니 즈그들이 해결 하도록 놔 둬라, 네나 하고 있는일 그 전처럼 재미있게 잘 꾸려 가도록 해라" 윤자와 힘들어 하는 요즘 생활에 대해 두어시간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가 맥주만 여러병 마시고 낮술에 취해 대리운전시켜 집에 돌아왔다. 국민학교 동창인 윤자가 힘들어 하니 내가 덩달아 슬며시 우울해 지는것 같다. 늙어서도 자식한테 기대지 않겠다며 포장집을 시작하고 자족하며 살아온게 어언 10여년이 다되어 가는데 지금 이 나이에 그 자식들 걱정에 골몰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대리운전 기사가 와서 일어서는 나에게 윤자가 푸념조로 한마디 한다. "이젠 우리 나이는 다큰 자식 걱정은 않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