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자네 포장집 이야기

윤자네 포장집 풍경-남씨 이야기

master 42 2006. 8. 31. 10:01

어제 퇴근길에 윤자네 포장집엘 들렀다.
오랫만이라 앉아있던 동네 사람들이 반가워 한다.
증권팀, 보험회사팀도 보이고 오랫만에 장교수도 와 있다.
빈자리 없이 꽉 차있다. 방안엔 손녀가 보인다.
며느리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 얼마전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병원에 누워있어서 데려와 보살피고 있다고 한다.
장교수와 마주앉은 남씨 옆에 앉으니 윤자가 맥주를 갖고 온다.
장교수는 소주를 마시고 남씨는 막걸리를 마시는데 나는 이집에만 
오면 맥주를 마신다. 
이렇게 각자 기호에 따라 술을 즐기며 담소를 나누는 자리에서
내가 해방과 6.25 전후로 해서 대신동 일대에서 유명했던 대구 
"금달래"에 대해서 물으니 모두들 한마디씩 그때의 이야기를 한다.
메모해서 적으나 그 자료가 시원치 않아 언젠가 대신동으로 가서
오래 살고계시는 어르신네를 만나 다시 자료를 수집하기로 한다.
그러다가 내 옆에 앉은 남씨가 자기 딸 이야기를 한다.
5년째 투병하고 있는 사연과 가족의 이야기를 옮겨 본다.
대학을 졸업하고 구미에 있는 S전자회사에 취직하여 두어해 잘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팔다리에 힘이 슬슬 빠지며 활기를 잃는 느낌이 있어 
병원에서 진찰받으니 "거무렁증(사지불명증)"이라는 희귀한 병명을 
얻어 휴직하게 되고 그때 부터 전가족과 더불어 투병하기 시작한다.
딸은 강한 의지력이 있어 그냥 놀수만은 없다하여 만화방도 차려 
주었으나 병이 서서히 진행되니 얼마 가지 못하여 그도 그만 둔다.
주위의 도움없이는 일어설 수 도 없게되고 변소길 마저도 주위에 
의존해야 하고 밥숟갈 마저 떠먹여야 하니 부모로서는 한시도 옆을 
떠날수 없게된다.
딸아이 23살때 부터 업고 다녀야 했으니, 더우기 주위 사람들에게 딸의 
병을 숨기며 살아가야 하니 더욱 힘든다.
3,4년을 숨기고 사느라 힘들어 하면서도 굿도 여러번 했다고 한다.
굿소리가 동네에 퍼질가봐 마음 조림도 많이했단다.
병은 하나지만 약은 수만가지라 한다.
어느 병원인들 자신감을 갖고 치료하는게 아니라 최선을 다 할 뿐이라며
언제나 희망적인 이야기를 듣지 못하며 병원엘 다녔다고 한다.
언젠가는 5,000만원을 주면 확실하게 치료해 주겠다는 사기꾼도 만났단다.
투병후 세월이 흐르며 딸의 병이 정신, 신경계통의 병이란걸 알았다.
5년째 투병 중인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그동안 하던 사업도 접고 장교수가 있던 대학에 취직하여 매일 출근하고있다.
부부가 같이 했던 가내공업이라 그만두니 딸아이 병간호는 훨씬 편해진다.
낮에는 엄마가, 퇴근후는 아버지가 보살피니 점점 안정을 찾는다.
사업을 접을 당시 살아갈려니 하도 허망해서 매일 술로 마음을 달랬단다.
여러해 전에 윤자네 집에서 자주 만났던것 같다.
그래도 만날때는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던 얼굴로 기억된다.
본래 그 병은 5년이 넘으면 서서히 좋아 진다고 한다.
변소길도 혼자가고, 잠자리도 직접 혼자서 챙기며 생활한다.
두째딸을 먼저 시집 보내고 많이 좋아져 가는 딸과 같이 살아가니 요즘은 
그래도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요즘 마시는 술이 달다고 하며 한잔 비우며 너털 웃음을 웃는다.
편안해 보이는 동안(童顔)에 웃음을 보이니 주위에 앉은 우리들도 덩달아 행복하다.
막걸리 한병을 마시더니 집으로 간다며 일일히 인사하고 윤자네 집을 나간다.
앉아 있던 우리들도 행복을 느낀다.
윤자네 포장집에 살아가는 재미가 솔솔 풍긴다.
오늘이 다음 블로그 만난지 700일째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