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먼길 떠나신 장모님.

master 42 2004. 11. 24. 19:06


지난 월요일 장모님이 돌아가셔서 오늘 3일장을 치루고 돌아왔다.
큰 처제가 효성 스럽게 친정 어머님을 모시고 살고 있었다.
평소에 심장이 좋지를 않아서 항상 약으로 버텨 오시다가 월요일 이날도 아침을 드시고, 처제와
TV를 시청하면서 흑콩으로 만드는 담뿎장 이야기를 하던중에 장모님이 기척을 않으시기에 옆으로
돌아보니 그 순간에 심장마비 증세가 왔는지 얼굴이 싸늘해 지드란다.
처제가 깜짝놀라 손, 발가락을 바늘로 따면서 119로 연락을 취하여 병원으로 가던중에 돌아가셨다.

향년 80세로 매사를 능동적으로 살아오셨던 장모님이셨다.
7남매의 장녀로 태어나 시집가서도 친정 여섯 동생들을 공부시키는데 일일히 신경을 쓰셨고,
슬하에 2남 3녀를 키우며 모두 대학교육을 시켰다.
성혼한 자녀들에게 김장이며 간장, 된장을 담궈서 주시니 모두가 그 맛을 그리워 한다.
근래에 와서는 같이 살고있는 큰 처제한테 모든걸 전수하실려고 하셨으나 장모님의 맛이 나오지
않는다고 처제는 안타까워 한다.

한때는 직물공장을 경영하였을 정도로 사업적인 수완도 발휘하였으니 치마만 둘렀지 남자 같으셨던 분이셨다.
불우한 여럿 아이들을 데려와 한식구 같이 키워 시집을 보내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일상을 살아오셨다.
그렇게 장모님 한테서 컷던 아이들이 이번 장례에 와서 친 어머님 돌아가신것 같이 서러워 한다.
명절때면 신랑과 같이 와서 세배도 올리고 장모님 하며 용돈도 드리고 갔던 부부들이다.

세상을 떠나 먼길 가실때 입으실 수의를 손수 장만해 놓시고 큰 처제한테 일일히 설명해 주셨던
흔적을 보고 우리 자식들은 그저 감탄만 할 뿐이다.
임종때 입혀 달라고 부탁하셨던 노랑 치마저고리는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입혀 드리지 못해서
큰처제는 못내 아쉬워 한다.
본견으로 만든 수의, 옥색 두루마기와 버선은 최고의 품질로 마련해 두셨고, 필요한 삼베류
까지를 꼼꼼히 다 챙겨 놓고, 혹시나 좀이 칠까바 좀약도 충분히 넣어 두셨다.
이 모든 품목들은 자식들에게 돈을 달라고 해서 준비한게 아니고 매달 받는 용돈을 모아서
직접 서문시장에 가셔서 마련해 두셨단다.

불교를 열심히 믿으셨던 장모님은 서툰 글씨로 오랫동안 손수쓰신 광명진언(光明眞言), 금강경과
다라니경을 가슴에 얹어달라고 겉봉에 유언을 남기셨다. 
작년초, 내가 파키스탄에 출장중에 어느날 밤 꿈에 어금니가 몹씨 흔들거려 아들한테 전화를
했더니 장모님이 입원하셨다 했다.
이때 한동안 혼수상태가 되어 돌아가시는줄 알았으나 깨어나셔서 지금까지 약으로 연명을 하시고
살아오셨다.
아마 그후 당신의 가실길을 예견 하시고 수의들을 준비하셨던것 같다고 처제가 울먹이며 전한다.

장례기간 내내 푸근한 날씨가 가시는 장모님의 복이라고 우리가족 모두가 이야기 한다.
먼저가신 장인어른이 계시는 포근한 유택으로 운구하는 길옆에 철늦은 쑥부쟁이 여럿송이가
오시는 장모님을 반기는듯 얼굴을 내밀고 있다.

장모님, 모든 시름 놓으시고 극락왕생 하시옵소서.

 


푸치니-나비 부인 중 허밍 코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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