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15년을 식물인간으로....

master 42 2004. 12. 7. 19:05


오늘 15년동안 식물인간으로 살아오다가 어제 저 세상으로 간 조카 빈소엘 다녀왔다.
1989년  추석전날밤, 사촌형님은 종합병원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정신없이 형수님과 같이
병원으로 달려가 맏아들이 교통사고로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서 주저 앉고 말았다.
그로부터 15년을 하루같이 그 아들옆을 떠나지 않은 두분이다.
그동안 집안은 풍비박산 나고 형님 내외분은 병까지 얻었으니 한사람의 실수가 한 가정을
파멸시키기에는 잠깐이라는걸 알수있다.

맏아들이  뺑소니차에 치여 의식을 못차리는 식물인간으로 살아오고 있었으니 환자를 간호하는
형님 내외분의 마음이야 오죽했을까....
운전자는 무면허,음주운전으로 뺑소니를 쳤으나 곧 잡혔지만 단간방 생활을 하는 처지라
보상금도 제대로 받지를 못했다.
더우기 아들은 월급타는 직장이 아닌 어느 면사 도매 가게에서 일을 배우며 미혼으로
생활했기에 보험회사에서는 일용 잡급직으로 분류하여 보험금을 많이 주지도 않았다.

병원에서 퇴원하라는 권유에 집안에 아들을 눕혀놓은 사촌 형님과 형수님은 그때부터
모든 일을 뒤로하고 환자 간호에만 정성을 드렸다.
세월은 흘러 사촌 형님은 세딸을 시집보내고 남은 막내 아들마져 장가를 보내면서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맏아들을 어루만지며 얼마나 통곡을 했는지 모른단다.
남들은 소생할 가망이 없으니 산소호스와 급식튜브를 제거하라고 권했지만 부모로서
어떻게 그렇게 할수 있느냐며 지극정성으로 돌보셨다.

그러기를 세월은 자꾸흘러 형님과 형수님도 건강에 이상이 왔다.
먼저 형수님이 당뇨가 악화되어 눕게 되었고,형님은 심근경색으로 고생을 하다가
5년여 전에 일차 수술을 하고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형수님은 어느정도 회복하여 형님과 같이 맏아들을 간호했고, 두째 아들과
며느리는 가게를 차려서 집안 생활비를 벌어 보태고 있다.
한사람의 실수로 한 가정이 이렇게 망가지는걸 옆에서 보면서 다시는 우리 주위에
이런 일들이 없어야 할것 같은 마음이다.

식물인간 환자를 집안에 데리고 산다는게 얼마나 힘든지를 옆에서 듣고보니
형님과 형수님을 존경하게 되었다.
방안 공기를 깨끗이 하기 위하여 항상 청결하게 해야하고,청정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미세한 분말로 갈아서 투입해야하고,대소변 처리도 그렇겠지만, 여러해 전부터 두분이서
나이 들어가고, 건강을 잃어가니 너무 힘이 든다고 하셨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언제 와서 언제 가는지를 모른다고 하셨다.
TV를 볼때나, 계절이 바뀌어 환자의 이부자리를 갈아 주어야 할때 계절을 느낀다고 하셨다.
어버이날이 올때면 몹씨 괴롭다고 하시며 맏아들의 생일날에 어떻게 해 주어야할지를
모르겠다시며 아들을 안고 실컨 울기도 하셨단다.

둘째 아들을 장가는 보내야 하는데 맏이가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다하니 아무도
시집오지 않겠다고 하여 늦게 장가 보내게 되었단다.
지금의 며느리는 시집와서 바로 팔걷어 붙이고 발벗고 나서서 조그마한 음식점을 하면서
밤늦게 까지 일요일 없이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훌륭한 며느리라고 집안에 소문이 나있다.
젊은 사람이 어찌 남편과 오붓이 나들이 가고 싶고,자식 앞세우고 친정 한번 떳떳이 가고
싶지 않겠느냐마는 모든걸 외면하면서 살아가는 질부를 볼때면 언젠가는 한번은 하나님의
은총이 내릴거라고 확신을 해 본다.

이제 형님의 나이도 75살이 되었으니 할아버지 대접받고 느긋하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으나 형편이 이러하니 식물인간 자식옆을 떠나지 못했다고 한다.
어느 명절인가 제사를 물리고 식사중에 누워있는 자식의 산소 호스와 튜브를 뻬버릴까 하고
부부가 합의도 했으나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그렇게 할수가 있나 하면서 두부부가
얼싸안고 한동안 통곡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15년을 식물인간으로 살다간 조카의 나이가 올해 50이란다.
빈소에 차려놓은 영정 사진은 고등학교 3학년때 찍은 앳띤 모습 그대로다.
오랫동안 식물인간으로 살았으니 주위 사람들에게도 부고를 전하지 않아 빈소가 조용하다.
그래도 동생들이 목놓아 슬퍼하며 빈소를 지키고 있다.
마지막 한달전에 동생들이 목사님을 초청하여 세례를 받게하여 천당 가는길을 인도
하였다고 한다.

부디 저 세상에 가서는 평안히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Bach-2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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