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자가용 타고 고향 나들이...

master 42 2005. 2. 7. 00:33

오늘이 2월의 첫째 일요일이라 백두대간 등산을 마치고 돌아왔다. 
새벽에 갈때에 택시 기사 한테 "설 대목 경기가 좀 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아이고 더 죽을 지경 입니다. 자가용이 좀 많아야지요"라고 한다. 
등산을 마치고 돌아오는 택시안에서 "기사 어른, 대목경기가 어떻습니까?"하니 
"더 못한것 같아요. 자가용이 더 설쳐대는데 길이 더막혀요."라고 한다. 
작년 까지만 해도 고향가는길은 자가용으로 고속도로가 막혀 평소보다 두배넘게 
시간이 걸렸다고들 했다. 
금년은 징검다리 연휴가 되어 좀 풀렸다고 하고, 고속도로가 많이 생겨서 교통량을 
분산해서 시간이 덜 걸린다고 한다. 
그래도 고향갈때 자가용 몰고 자식들 태우고 가면 부모님한테 생색이라도 낸다고 한다. 
내가 국민학교 5학년때(1954년) 인가 아버지가 추석때 택시를 대절해서 가족들 데리고 
고향엘 가셨다. 
아버님이 해방후 3년간 농사를 지으며 농한기때 두형님과 일본에서 배웠던 
메리야스 가내 수공업을 하여 5일장을 돌며 장사를 해서 그런데로 돈을 좀 모으셨던거 같다. 
그리고 1948년에 대구로 이사를 하셔서 메리야스 공장을 운영하셨다. 
6.25 전쟁으로 경기가 그런데로 좋았던지 아버지가 하시는 공장은 번창 하셨다. 
6.25가 종전되고 그이듬해 아버지는 형님들과 상의하여 추석 전날 고향 큰집에 갈때 
택시를 대절(그당시는 가시끼리라 했음) 해서 나가자고 했다. 
고향을 떠나오고 처음으로 자식들과 고향엘 가는데 아버지는 고향 사람들 앞에서 
한번 으쓱대고 싶으셨던것 같다. 
또 추석날 저녁때 그 택시를 고향 큰집 앞으로 다시나오도록 계약을 했기에 대구로 들어올때도 
그 택시를 타고 들어왔다. 
그 당시는 고향에 다니러 온 사람들은 대구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도 했으나 워낙 
교통편이 열악했기에 걸어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당시 내가 국민학교 5학년이었으니 철없는 나는 그냥 좋고 어께가 으쓱했다. 
그때 대절했던 택시가 요즈음과는 달리 날렵한 유선형이 아니고 윌리스(WILLYX) 
탑차로 기억한다. 
얼마전에 라오스 배낭여행때 비엔티엔 게스트 하우스 앞에 세워 두었던 짚차를 
발견하고 디카로 한컷 담아왔다. 
명절이 되어 고향에 성묘하러 갈때면 그 옛날 택시를 대절해서 고향 다니셨던 
아버님이 생각난다. 
요즈음 자가용을 손수 운전하고 고향 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때와 같을까?? 

'가족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큰형님이 생각난다.  (0) 2005.04.05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 ???  (0) 2005.02.15
15년을 식물인간으로....  (0) 2004.12.07
붕어빵 속에는 붕어가 있더라.  (0) 2004.12.03
또 외손자....  (0) 2004.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