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본

일본엔 경기가 돌아오고 있는곳도 있네... 시코쿠(四國) 이마바리(今治) 리포트.

master 42 2012. 9. 8. 06:46

 

                    몇년전 찍었던 이마바리항구의 아침 풍경

 

 

며칠전, 일본을 급히 다녀왔다.
몇년전 부터 후배가 만드는 기계를 일본의 친구한테 수출하여 지금은 꽤나 많이 나간다.
전기, 전자를 전공한 후배 S는 30여년을 한업종(전자자카드 제작)에 매진하여 국내에서
유일하게 베를 짤때 무늬내는 전자자카드 기계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오랜동안 힘들여 성공시켜 놓으니 IMF를 전후로 하여 한국의 섬유경기는 완전히
가고 그나마 남아있는 섬유업체들은 유럽제 기계를 구입하고 있다.

 

그래도 S는 열심히 만들어 국내에서 유일하게 알아주는 기계로 알려져 있다.
7년전 수출의 어려움을 알고 일본 시코쿠 이마바리에 있는 내 친구 아오이를 통해서 일본
에 팔기시작하였다.
이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것 같다.
주문받을때 한두대씩 오던 오더가 이제는 제법 4대씩 받으니 만드는 재미도 있다.
두어달전에 보냈던 기계를 설치하던 아오이 아들 히데끼가 기계에러를 해결하지
못한다하여 급히 달려갔는데 도착하고 10분만에 해결해 주었다.
히데끼도 오랜동안 전자자카드 설치, 수리를 해왔기에 왠만한 고장을 스스로 잘 해결해왔는데
1퍼센트의 확율로 일어나는 기계 에러라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저녁먹는 자리에서 전국 타올 수요의 50%이상을 생산하는 이마바리의 현제 상태를 들었다.
세계의 타올의 중심지라 할 정도로 유명했던 이마바리는 조선업과 더불어 이 도시의
두축을 이루는 산업이다.
그런데 1990년 부터 중국제품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부터 서서히 퇴로의 길을 걷고있다.
1990년 까지 500여개 타올회사가  큰공장들이 중국으로 자리를 옮기고 작은공장들이 망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80여개의 회사만 남아있다.
남아있는 회사들은 모두 가족이 운영하거나 자금이 튼튼한 회사다.

 

옛날 호황때는 24시간 가동했는데 불경기를 만나고 부터는 주간작업만 하여 명맥을 이어왔다.
몇년전 부터 중국으로 건너간 큰 공장들(8개회사)이 서서히 문을 닫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중국에서 만들어 오는 타올제품의 수입량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러니 국내수요만 만드는 이곳 이마바리의 경기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한다.
중국에서 만들어 오던 수입업자들이 국내 공장으로 주문을 돌리고 있다한다.
주간 작업만 하던 공장들이 8시간 2교대로 작업을 하고 있고, 지금 까지 갖고있던 헌기계들을
정비하여 돌리고 있다.

 

 

 

 

여러해동안 새기계(직기)를 구입하지않던 공장들이 헌기계를 정비하고, 구형 자카드를
폐기하고 전자자카드로 대체하여 능율을 올리고 있다.
유럽산 전자자카드는 S가 만드는 한국산 보다 2배이상 비싸서 모두들 외면하고 있다.
오래된 직기에 적은돈을 드려 한국산으로 대체해 놓으니 구형직기의 생산성이 올라가고
우선 일하는 사람들이 편하고, 또 그 제품들이 좋아진다.

 

이번 출장길에서 S는 돌아오는 발길이 가벼울 정도로 희망에 부풀어 있다.
이마바리의 경기는 중국으로 갔던 큰 타올 업자들이 망하고, 설비된 기계조차 갖고돌아오지
못하니 서서히 돌아오는 경기상승을 이곳 업자들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오랜동안의 불경기를 감내하며 힘들게 공장을 운영했기에 모두들 조심하며 보고있다.
기계설비를 일부대체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닥아오고 있는 경기를 바라보고있다.
난 20여년을 이곳 이마바리에 내가 만든 기계를 팔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1990년대의
불경기로 한대도 팔지못하고 포기했었는데 후배S가만든 기계는 나의 오랜기반을 발판으로
서서히 팔려나가고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인것 같다.

 

 

 

 

내가 요즘 같이 바쁜중에도 후배S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서 아오이를 소개해 주고
S가 일본말을 못하니 통역도 해주는것은 친구 아오이와 그 아들 히데끼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도와주고 싶어서다.
1990년초, 아오이가 이마바리 타올공장에 새로운 기계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전해주면
금방 건너가서 그 기계들을 세밀히 살펴볼수 있도록 해주고, 많은 기술자료도 주었다.
내 기계가 이만큼 발전할수 있었던것도 아오이 부자간의 도움이 바탕이 되었다.

 

1980년말에 20여년 몸담았던 형님의 타올공장에서 강퇴당하여 일자리없이 방황할때
아오이는 "오랜동안 해오던일, 소질에 맞는 일"을 찾아서 해보라며 많은 지도를 해주었다.
아오이는 요즘 당뇨가 심한지 하루 세번 인슈린 주사를 맞고있다.
아내가 몸이 성치않아 밥하고, 세탁하고, 청소하는 일은 자기몫이라며 일은 아들에게
완전히 맡기고있다.

 

내가 좋아하는 오지 트랙킹이며 배낭여행 이야기를 하면 무척 부러워 한다.
지금의 바쁜일을 9월말까지 끝내고 10월, 난 배낭메고 에집트로가서 피라밋도 보고
사막에서 자며, 밤하늘의 별들을 눈과 가슴에 가득담으러 간다.
한동안 힘들었던 일들을 모두 잊고 돌아올때는 새로운 일들이 나를 맞이하겠지...

 

가는길에 요르단으로 건너가서 페트라도 보고 올란다.

 


(지난달 군성산악회에서 후배가 찍어서 포샵해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