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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여행

하루

by master 42 2005. 4. 22.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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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간 출장 겸해서 서울을 다녀왔다.
언제나 그랬듯이 당일치기로 서울을 다녀왔기에 이번에는 딸아이의 강력한 바램 때문에
사위집에 머물었다.
항상 사위는 나와 이야기를 나눌때면 혹시나 말에 때가 묻지 않을까 할 정도로 매사에
조심한다.
그러니 딸아이가 차려주는 술상 앞에서 사위와 술잔을 나누는 자리에서도 사위는 조심하는 
모습이 역력하니 내가 더 입장이 불편하다.
손녀와 같은 나이(4살)인 첫째 외손자넘은 아비를 닮아서 그런지 자라는 모습 조차도 
얌전하게 커가니 딸 아이가 키우는데도 편한것 같다.
그러나 둘째 외손자넘은 좀 번잡스러워 엄마를 애 먹이고 있는것 같다.
그러니 딸아이 집에 하룻밤을 자고 간다는게 여간 불편스러운게 아니다.
그럭저럭 하룻밤을 자고 서울 업무를 바쁘게 마치고 KTX로 내려왔다.
난 KTX를 탈때면 항상 역방향으로 자리를 예매한다.
첫째 할인이 되어 좋고, 둘째 차창 밖을 내다보지 않고 책을 읽거나, 공상(아이디어)에 
몰두 할수 있으니 좋다.
오늘은 10C좌석엘 앉았는데 8,9 좌석에 네분의 노인들이 탄다.
모습으로 봐서 70대 중반은 됨직하다.
쓰는 말씨로는 강한 이북 억양이 있는걸로 봐서 고향이 이북인것 같다.
네분중 한분만이 점퍼를 입었지 모두들 단정한 차림으로 넥타이 까지 차려입은 모습과 
활달한 이야기속에서 70대 중반의 나이를 잊은 분들 같다.
자리에 앉자말자 배낭과 가방들을 열고 먹을것들을 내어 놓는다.
우유, 바나나, 빵 그리고 생수들이고 더 푸짐하게 배낭에 있는것 같다.
모두가 집에서 마련해준 음식들로 보인다.
아마 부인들이, 아니면 며느리들이 정성들여 싸 주셨던것 같다.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KTX를 처음 타는것 같다.
"비행기 같구먼" "야! 빨르네..."등의 말들이 네분 노인들의 KTX 첫 시승담이다.
부산으로 가는 모양인지 연신 즐거운 이야기로 이어진다.
부산 자갈치 시장 회맛 이야기며, 해운대 백사장 이야기도 나온다.
송도 이야기에서는 요즘 많이 더러워져서 가기 싫다는 이야기도....
앉은 자리에서 가져온 먹거리들을 꺼내놓고 잘도 잡수신다.
최근에 점퍼를 입은분이 태국을 다녀오셨는지 태국 이야기로 신명이 난다.
자식중 한분이 그곳에 살고 있다며 치앙마이 까지 다녀왔고, 캄보디아도 다녀왔다고 
자랑스럽게 너스레로 분위기를 잡는다.
깔끔하게 도리우찌 모자를 쓰신분은 오늘 나오는데 자식들이 용돈으로 준다며 한뭉치 
돈을 자랑스럽게 내어 보인다.
모자쓴분 옆자리에 점잖은 모습으로 비스듬이 앉아계시는 분은 간간이 이야기속으로
 넘나들며 조용하게 항상 웃는 얼굴이시다.
그 앞쪽에 앉으신(점퍼 노인의 옆자리) 안경쓰신분의 이야기도 만만치가 않다.
그 친구분중에 한분이 복수가 많이 차서 죽을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목사가 와서 병을
고쳐 주겠으니 예수를 믿겠느냐고 하드라며 좌중을 휘여 잡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 목사님과 두달을 기도하고 찬송하였더니 병이 온데간데 없이 나아 건강해 
졌다는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로...
그래도 노인분들이라 그런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다.
서로들 나누는 이야기가 그리 크지 않고, 어느때는 머리를 맞대고 조용조용히 이야기 
하니 주위로 부터 눈총도 받지 않는다.
웃는 얼굴들에서 인생의 황혼을 즐기며 사시는 네 친구분들의 환한 모습을 본다.
바로 이 네분들의 모습위에 나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조금 두려운 생각이 든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즐겁게 친구들과 건강한 모습으로 여행을 즐길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1시간 40분동안 네분 노인들의 이야기 나누는 모습과 함께하고 오니 금방이다.
대구에 도착할 쯤 또 한번 네분들이 지치지도 않고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들을 
눈에 새기고 내린다.
"네분, 황혼여행 즐겁게 보내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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