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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만났는데...

하루

by master 42 2005. 10. 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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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오봉산에서...(소양호가 아래로...)

 

어제 우리들의 만남은 50년만의 만남이 아니었던가 싶다. 집앞 골목길 끝자락에 그녀의 집이 있고, 매일 학교 갈때면 그녀의 집앞을 지나가야했던 그 시절, 더우기 국민학교 1년 후배였으니 먼 발길, 등넘어로 만난지도 어릴때 부터 였으니 중학교 가는 골목길에서 짬짬이 만나는 그녀가 사춘기의 나로서는 더욱 싱그럽게 느껴졌다. 어제 그녀를 만났다. 아마 거의 50년은 되는것 같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손을 덥석 잡았다. 그녀도 옛날과 달리 많이 용감해 졌는지, 연륜의 때가 묻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반가워 하며 내 손을 살며시 잡는 부드러운 감촉을 느낄수 있었다. 그 감촉이 아직도 내 손바닥 안에 아늑히 느껴진다. 그녀의 대궐 같은 집은 아직도 그대로였다. 대문을 열고 같이 들어갔다. 그리고 동생들과도 인사하고 넓은, 나무가 많이 우거진 정원을 휘둘러 보았다. 아마 내 생애 처음으로 그녀의 집안으로 들어와 보았다고 생각한다. 등교길에 빼끔히 열린 그녀의 높고 두꺼운 대문 사이로 들여다본 대궐같은 그녀의 집안이 그때 까지의 내게는 모두였으니까... 어쩌다가 등하교 길에서나, 그녀의 집 대문앞에서 만났던 그녀의 핼쓱한 얼굴이 지금은 많이 씩씩해 보이는것 같다. 우린 그길로 돌아나와 밤고개로 드나드는 한길가로 걸었다. 시내로 가던길을 멈추고 향나무가 우거진 숲길이 있는 반대 방향길로 발길을 돌렸다. 이 길로 가면 우리들이 다녔던 국민학교 가는 향나무밭 고갯길로 간다. 일제시대 수만평 밭뙤기에 정원수로 향나무를 키웠던 일본 사람이 해방이되어 일본으로 건너가며 일꾼중에 부지런 하고 심성이 착한 한사람에게 아무런 대가도 없이 넘겨 주고 갔다는 향나무 밭이 이 마을에 명물로 남아있다. 그때만 해도 그 나무가 큰돈이 될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그 주인도 끝내는 큰돈 한번 만져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떳다고 한다. 개발시대에 자식들의 성화에 조금씩 나누어 팔고하여 끝내는 푼돈으로 없어졌다고 한다. 아마 그녀를 알고 처음으로 손잡고 걸었으니 나는 그저 황홀할 따름이다. 학생때는 한마디 말도 걸어보지 못했고, 대학에 들어가서 동대문 운동장에서 4.19 기념식을 할때 먼발치로 E대학 끝줄에 서있던 그녀를 본것이 마지막 이었다. 군대를 마치고 왔을때 결혼했다는 소식을 형수로 부터 듣고는 한동안 허전했지만 세월이 약이라고 곧 잊어버렸고,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너무나 뜻밖의 만남이었고, 나이들어 부끄럼이 없어져서 그랬는지 가까이 닥아오는 그녀가 마냥 황홀하기 까지 느껴 졌다. 향나무밭 어느 중간 쯤에선가 멈추어 서서 무슨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녀의 손이 나의 손을 매만지다가 손끝에 돋아난 까시래기를 뜯어주며 손톱을 정리해 주겠다며 손을 반듯이 내밀어라 하기에 그녀 앞으로 손등을 위로 하고 팔을 쑤욱 내 밀었다. 그런데 그녀는 온데 간데 없지 않는가. 팔을 흔들며 그녀를 찾아 뛰어가다가 향나무밭 밭고랑에 넘어졌다. 그순간 잠을 깨고 보니 꿈이었다. 지난밤 꿈속에서 50년전에 그렇게도 짝사랑하며 만나고 싶었했던 대문 큰 집에 살았던 핼쓱한 그녀를 만났다. 그때는 말도 한번 걸어보지 못했는데.... 아직도 꿈속에서 잡았던 그녀의 따스한 손 감촉을 느껴 본다. 10여년전에 그녀의 동생과 거래를 한적이 있다. 칠남매의 위로 누님을 여섯분 둔 외동아들이다. 위로 여섯 누님을 두었다며 그 극성에 짓눌린다고 불평이 대단했다. 나보다 10년 후배라 거래도 점잖게 이루어졌고, 언젠가 그의 아버지와 직원들을 데리고 일본엘 갈때 내가 안내한 적도 있다. 지금은 사업에 실패하여 그냥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소식을 년전에 들은적이 있다. 아침 창문을 여니 좀 쌀쌀한 한기가 쏴 하고 들어온다. 아, 가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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