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참 슬픈 날이다.
오늘 나는 내 친구 L이 보름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또 며칠전에 그 친구의 부인이
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보름전에 죽은 친구 L은 국민학교, 중학교를 같이 졸업했고, 고등학교는
다르게 졸업했으나 자주 만나며 교우하며 지냈고, 대학때도 같이 친하게
지냈던 사이다.
친구 L은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 대구로 내려와 친척이 경영하던 직물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배워서 몇년만에 독립하여 서서히 사업을 키워나간다.
1970년대의 산업 성장기를 맞아 탄탄한 섬유 회사를 만들고 다져서 80년대에
와서는 사업영역을 넓혀 나가기 시작한다.
섬유를 만들기 위한 기본 공정인 싸이징, 연사, 제직, 염색가공에 이르기 까지
모든 일관 공정을 갖추어 사업을 탄탄히 다져간다.
향토 기업으로 크게 발전하더니 90년데 초반에는 해외 투자로 중국 칭따오로
사업 영역을 넓혀서 그로벌 하게 키워 나간다.
국내에서는 다른 분야에 까지 사업 영역을 벌여 나가더니 90년대 중반을 넘어
서면서 사업에 약간의 무리를 느끼는가 싶더니 금방 모기업에 까지 영향을 끼쳐
어려운 경영으로 치닫는다.
일본이 버블 경기로 힘들어 할때 친구 L도 힘들어 한다.
그러다가 90년도 중반을 넘어서기가 바쁘게 펼쳐논 사업에 힘이 부데끼는지
한동안 은행에 돈 빌리러 들락날락 하다가 끝내는 모든 사업을 뒤로 두고 중국
으로 야반도주 한다.
중국에는 친구 L이 만들어 놓은 섬유공장이 있기에 믿고 건너간다.
그러나 모기업이 부도가 나니 중국에 있던 자회사 마져 친구 L을 배신한다.
그러나 창립자의 공을 생각해서인지 중국측 관리자는 L을 사장으로 대접하며
경영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개밥에 도토리가 되어 간다.
세상을 원망하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술로서 자학하며 지내니 몸이
망가져 가기 시작한다.
사업이 번창하며 잘 살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질것 같다.
술로서 마음을 달랠 뿐이다. 지병인 당뇨가 심해지고 자꾸 건강이 악화 되어간다.
그래도 귀국할수 없는것은 부도낸 사업가로 형사적인 책임이 있고 귀국하면
구속된다는 강박관념에 중국에 살며 몸만 망가져 가고 있다.
2년전, 말 한마디 할수 없는 폐인의 몰골로 귀국하여 요양원에 들어간다.
친구들이 병문안 가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겨우 알아보는 사람은 눈만
껌뻑이며 아는체 할 뿐이다.
한 보름전에 친구 L이 죽었다고 연락이 와서 병원 장례식장으로 문상을 다녀왔다.
슬하에 딸이 둘 있는데 미국에 살고 있으나 영주권이 없어서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나올수가 없어서 부인과 처남이 장례를 치뤘다.
장례식장에 가보니 설렁하다. 친구 L이 잘 나갈때 사귀었던 친구들도 많이 보이지
않고 그래도 오랫동안 정 나누었던 친구 몇이서 지키고 있다.
그러고 나는 업무차 해외 출장을 다녀와서 바쁘게 다녔는데 오늘 한 친구를 만났더니
친구 L의 부인이 며칠전에 돌아가셔서 장례를 또 치뤘다고 한다.
친구가 중국에서 폐인처럼 살아갈때 그의 부인도 옛 영화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보험회사에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한다.
최근 2년간에는 짧은 수입으로 남편의 요양원 비용도 마련해야 했으니 힘에 겨웠
을 것 같다고 모두들 이야기 한다.
그러다가 남편이 세상을 뜨고 그 뒷 정리를 하며 정신없이 다니는 과정에서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뜨게 된다.
남편의 사망 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만들기 위하여 동사무소 앞 경사로 에 주차를
하고 정신없이 차에서 내리는데 주차 브레이크를 당기지 않아서 인지 차가 뒤로
슬금슬금 후진하기에 자기도 모르게 뒤에서 밀었단다.
그러나 연약해 질대로 연약해진 몸이고 가속도가 붙은 차는 부인을 뒷 담벽으로 밀어
가슴과 머리를 덥쳐 죽음에 이르게 한다.
오늘 친구 한테서 들은 사건의 대략적인 개요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정말 인생이 허망하게 느껴진다.
친구 L의 가정이 며칠 사이에 풍비박산이 되어 완전히 사라져 버렸으니...
모인 친구들은 저승으로 가던 친구 L이 부인을 동반하고 싶어 불러서 갔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 며칠 사이에 이렇게 허무하게 한 가정이
없어 지다니 ...
모두들 세상사 모를 일이라며 헛 기침만 해댄다.
이 보시게들, 다음은 우리들 차례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