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나는 두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master 42 2006. 11. 14. 10:41

 

어제 저녁 며칠전에 주문 받은 기계의 설계를 마치고 나니 01:00시가 지나 잠도 오지 않고 하여 TV를 켜니 유선방송에서 신설국(新雪國) 이란 일본 영화를 상영하기에 끝날때 까지 봤다. 그 영화속의 주인공이 남자는 구니오(邦夫)이고 여자는 모에코다. 구니오란 일본 이름을 듣는순간 내 어릴적 일본 이름이 구니오란걸 알고 한동안 상념에 빠졌다. 난 지금도 두가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후 돌아왔으니 면의 호적계 서기가 일본씩 이름을 한국 이름으로 바꿀때 항렬자(魯)를 따르지 않고 그대로 옮긴것 같다. 이 사실을 고등학교 입학할때 서야 알았으니...그후 절차를 밟아 법원에서 개명 할수 있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냥 불편없이 쓰고 있다. 학교 다닐때 쓰던 이름은 친구들 사이에 아직도 쓰고있고(90%), 주민증을 확인해야 하는 공공 부분은 일본식 邦夫라는 이름으로 쓰고있다. 은행, 여권, 주민증, 인감증명, 사업자등록증, 세금계산서 등등... 오늘 이야기의 사건은 내가 서울 직장을 그만두고 대구로 내려와 형님이 경영하시는 S직물에서 일한지 5, 6년 지난 70년대 중반쯤 되었을때다. 그때 S직물에서는 일년에 두번씩 군수용 제품을 만들어 납품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부정부패가 심했던 때라(요즘도 없어진것은 아니지만) 납품 갈때는 납품 담당자는 납품 과정에서 떡값(?) 문제로 큰 곤욕을 치른다. 처음 부터 끝까지 과정마다 떡값이 들어간다. 납품 총액과 부피에 따라 그 떡값의 차이가 난다. 납품 담당자는 어떻게 하면 적게 주고 경비를 줄이느냐에 골몰한다. 아침에 들어간 납품답당자는 오후 늦게라야 납품서류를 받아 나온다. 떡값이 문제가 아니라 과정마다 격는 실랑이하는 고초가 힘겹다. 그당시 그러한 일은 내가 도맡아 했다. 떡값(돈)이 연관되니 사장은 혹시 다른 직원을 보내면 삥땅해 먹을지 모른 다는 불신에 항상 나를 보냈던 것이다. 이 부분만은 퇴사 할때 까지 성실하게 해 주었다. 어느날 친구들과 만나 술자리를 하던중, 그 당시 특수부대에 근무하던 친구(학교동창)와 한담중에 납품을 좀 쉽게 할수 있는 방법으로 납품부대 근처에 있는 특수부대 친구를 소개 시켜 달라고 했다. 적덩한 떡값(모든 납품업자들이 각오하고 있는)은 들어가도 되니 납품과정 중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서다. 같은 업을 하는 업자중에는 그렇게 하여 경비도 줄이고 납품을 쉽게 하는 것을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농담을 섞어가며 납품과정에서 격었던 일들을 단편적으로 이야기 하는 중에 특수부대에 근무하는 친구는 머리속으로 모든 이야기를 메모하고 있었던것 같다. 한 열흘 정도 지나니 친구가 근무하는 부대의 선임하사가 조사할것이 있으니 부대로 와 달라고 한다. 뭣때문에 그러냐고 물으니 오면 안다고 하며 뭐 그리 힘드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친구가 근무하는 특수부대에 들어가니 바로 조사실로 나를 몰아 넣는다. 조사관은 "며칠전 X대위 한테 이런 사실을 이야기 한적이 있습니까?" 한다. 그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드는것 같았다. 아니 실신할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그런 뜻으로 이야기 한게 아니고 친구라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로 한것 뿐인데 이게 말썽이 되다니..."하며 얼버무린다. "그러나 정보계통을 통하여 상부까지 첩보된 상태라 그냥 넘어갈수 없습니다" 그러는데 그 친구가 조사실로 들어오는게 아닌가. 그러면서 "친구야, 네를 위해서 잘 해 줄려고 하는거니까 사실대로 이야기 해라" 한다. 내가 그 친구에게 버럭 화를 내며 "야 임마, 내 언제 그렇게 이야기 했어. 이 친구, 친구 팔아 출세 할려고 하는구먼..." 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문제는 벌써 커진 상태라 사실을 축소해서 이야기 하고 조사실을 나온다. 조사실을 나오니 친구가 입구에 따라 나오며 "야, 내가 네게 도움 줄려고 했던 거니 오해 하지 말아라" 하길래 "야 임마, 잘 먹고 잘 살어라, 너 정말 깨끗한 놈이야?" 하며 눈에 핏발을 세워 경멸의 눈초릴 보냈다. 석달후, 또 같은 부대로 납품을 가게 된다. 위병소에 신고를 하니 병장이 뒷사무실로 향해 "장교님, S직물에서 왔습니다"하는 소리를 듣는순간 이거 오늘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곧 이어 나이든 준위가 나오며 "음, 오늘 잘 만났네, 당신이 XX魯야? "하며 잡아 먹을듯이 달겨든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 납품때 근무했던 위병소 부터 마지막 담당자 까지 특수부대 조사실로 끌려가 큰 곤욕을 치뤘다고 옆에서 이야기한다. "아닙니다, 저는 XX夫 입니다" 하니 "그러면 XX魯는 누구야? 하며 욱박 지른다. "아, 그넘...사장 동생 입니다. 저는 사장 사촌 입니다"하며 순간의 기지를 발휘한다. "사장 동생인 그넘이 특수부대에 있는 친구한테 이야기 해서 이렇게 된것 같습니다. 저도 입장이 곤란하여 사장 동생과 한바탕 싸웠죠." 이런저런 거짓말로 손이야 발이야 빌며 위병소를 통과하여 대여섯 과정 넘는 납품 담당자 마다 또 자초지종을 거짓말로 떼우며 또 손발 빌며 오후 6시가 넘어 납품하고 돌아왔다. 정말 나의 두가지 이름이 유용하게 쓰일줄은 미처 몰랐다. 아마 특수부대에 있던 그 동창친구는 아직도 내가 두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는걸 모를 것이다. 그후 나는 그 친구와의 상종을 피하고 지내지만 동창회에서 만나게 되면 그 친구도 나도 그때의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는다. 그 일이 있고 그해 동창회때 만나 "이새끼, 친구 팔아 먹는 넘" 이라고 옆에 둘러 앉은 친구들 한테 큰 소리로 한마디 질러대고는 지금까지 별로 만나지 않고 있다. 아마 그 친구도 그 일 때문에 내한테 대한 마음은 편치 않을걸로 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공직생활을 하며 친구들 한테 잘 한일도 있지만 또 직급과 직위를 이용해 친구를 괴롭힌 일도 있다는걸 그후 피해본 친구한테서 들었다. 힘이있는 친구 한테는 약하고 힘이없어 보이는 친구는 희생물로 잡는 좀 악날한 동창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지내니 그 친구 옆에 갈 일도 없고, 마음 정리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그때 그 친구한테 당했던 일이 자리잡고 있다. 그일 이후 지금까지 새기는 마음은 "남자는 말을 함부로 하는게 아니다" 이다. 그런데 천성적으로 입시울이 가비얍은 나는 어디서 든지 말이 많다. 낙천적인 나는 이게 이 나이 들도록 고쳐지지 않는 후회다. 언제 철 들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