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미얀마

66세, 못 말리는 노인들 배낭여행 29일-미얀마, 캄보디아, 베트남

master 42 2007. 3. 3. 16:49

 

29일만에 배낭여행을 끝내고 2월 22일 내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나 그랬던것 처럼 66살의 늦은 나이의 노인 세사람과 50대 말의 초로의 후배가 함께 뭉쳐 드림팀을 만들어 배낭 지고 떠났다. 지금 까지 몽골(25일), 라오스(24일), 실크로드(17일), 샹그릴라(18일)를 배낭지고 다녀왔다. 또 작년 7월, 7시간만에 백두산 서파 종주도 마치고, 지난 년말에는 15일간 네팔 여행하며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6박7일)를 나혼자 다녀오기도 했다. 진갑 나이에 시작했던 백두대간 종주를 1년 10개월만에 끝내고 지금은 낙동정맥 을 종주 중이다. 아마 이렇게 평소에 다지는 건강이 배낭여행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것 같다. 배낭여행은 참 편한것 같다. 그리고 돈도 많이 들지 않아 더 좋은것 같고... 페케지 여행은 새벽 부터 께워 저녁 늦게 까지 끌고 다니고 쇼핑도 강요한다. 좋은곳엘 가면 더 머무르고 싶으면 마음데로 일정을 바꿀수도 있다. 차이나 타운이나 재래시장을 찾아 맛있는 현지 음식도 싸게 먹을수 있고, 기념품도 싸게 살수 있다.

양곤 거리

 

지난 1월 25일 떠나 미얀마 18일, 앙코르왓 5일, 베트남 호치민 시티 5일이다. 모두들 설 명절을 밖에서 쇠기로 하고 떠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 했다. 이번 배낭여행은 지난 초가을 부터 계획했다. 나를 뺀 나머지 세사람이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라 항상 방학을 이용했다. 또한 네사람이 준비 임무를 분담하여 완벽을 기했다. 다녀와 정리해 보니 국제선 항공료(부산-방콕-양곤-방콕-시엠립-호치민-방콕-부산) 가 1,350,000원(비자대 포함), 기타 경비 900달러 들었다. (게스트 하우스 숙박비, 교통비, 식대, 미얀마 국내 항공료 300,000원정도, 나팔리 해변 리조트 5일 경비 450달러, 기타 경비 포함) 마지막 나팔리 해변 리조트에서 배낭여행객 답잖게 호사를 부렸더니 450달러 더 들어간것 같다. 4사람이 움직이니 택시를 많이 이용했다. 교통비가 만만치 않더라. 또 젊다면 미얀마 국내를 버스타고 다닌다면 엄청 헐하게 여행할수 있다.

쉐다곤 사원

 

항공권 예매와 입국 비자 준비, 티켓 중간 확인및 일정 변경으로 인한 응급 비행 스케쥴은 평소 여행을 많이 하는 내가 맡고, 여행지의 정보 수집과 재무담당은 K가, 일정 진행과 건강및 약품준비는 H가, 나머지 기록과 기타 세심한 부분은 C가 맡는다. 우리들 각자가 미얀마를 바라보고, 느끼는 감성과 심리적 해석과 색갈이 각각 다를것이라 생각하며 여행 중간에 종종 서로가 토론하며 상대가 바라본 색갈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니 더욱 보람된다.

쉐다곤 사원

 

출발하기전에 각자가 수집한 인터넷 정보를 갖고 세차례 만나 토의를 거쳐 확정하고 준비물을 준비한다. 또 다녀오고 나면 여행 후기를 정리 기록하며, 한동안 즐겁게 추억에 빠져 들 것이다. 참고한 인터넷 기록중에는 대마왕님의 미얀마 여행기를 가장 많이 참조한것 같다. 또 나중에 설명 하겠지만 인레호수에 갔을때 대마왕님의 존함을 애용(?) 하였기에 언젠가는 감사의 술도 한잔 대접할까 한다. 25일 부산 김해 공항을 출발하여, 방콕을 거쳐 미얀마 양곤에 도착하니 저녁이다. 마침 그곳에서 사업하고 있는 C의 제자 J사장이 마중나와 그곳 진행이 한결 쉽다. J사장 한테서 들은 이야기와 그 동안 배낭여행 하며 격었던 일들을 기록해본다. 정리 기록하며 내 존재의 이유를 알수 있는 여행담이 될런지 걱정이다. 아직도 나는 세계에 대한 많은 호기심을 갖고 있다. 이 나이가 되어도 호기심은 자라는가 보다. 그러니 세계가 더욱 흥미로워 진다. 호기심, 이것은 내가 갖고있는 커다란 특권인것 같다.

사원안에서 뭐 하는건가...

 

정사(正史)적인 이야기는 많은 여행자들의 훌륭한 기행문으로 대신하고 나는 다니며 주워듣고, 만지고 엎어지며 격었던 야사(野史)적인 이야기를 옮겨 볼가 한다. 책이나 인터넷으로 얼마던지 알수 있는 곳이지만 직접 찾아가서 느끼는것이 더 좋은것 같다. 그래서 여행이 우리들의 감성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가 보다. 여행 떠날때나 돌아왔어도 아내는 언제나 똑 같은 말로 내게 핀잔을 준다. "TV에 다 나오던데 뭣하러 힘들여 거기 까지 갔다와요?'다.

깐도지 호수의 사랑 이야기

 

우리들 60대 중반 배낭 드림팀이 미얀마를 돌아 다니는데 10시간 이상 걸리는 버스나 배로 움직이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듯 하여 각 구간을 옮겨 다닐때는 비행기를 이용한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자식들이 준 용돈도 있고 하여 호사를 좀 부린다. 그러나 그리 많이 비싼 편은 아니라 스스로 자위하며 마음 편히 타고 다닌다. 다닌 코스는 양곤-바간-만달레이-해호(인레 호수)-나팔리-양곤 이다. 여기서 다른 배낭여행 팀들이 가지 않은 나팔리가 다른 맛을 풍긴다. 다녔던 곳들의 이야기는 다시 기회를 만들어 하기로 하고 우선 미얀마에 대한 주워 담은 이야기를 옮겨 본다.

건기라 깐도지 호수 나무에 물을 뿌린다.

 

미얀마는 현재 군사 독재 국가이다. 6.25때는 그당시는 우리들 보다 더 잘 살았다. 우리나라도 쌀 원조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보다 더 못사는 나라이니... 아웅산 장군의 독립운동으로 2차대전이 끝나고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하였으나 얼마후 아웅산 장군은 저격당하여 죽고 네윈 장군이 권력을 잡는다. 그후 지금 까지 군부 독재가 이어지고 사회주의 국가가 되고 권력 유지를 위하여 국민을 탄압하게 된다. 국민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고 그들의 권력만을 위해 존재하는 정부 같이 보인다. 국가 경쟁력은 아예 상실된 나라같이 느껴 지기도 하고... 1989년 버마에서 미얀마로 나라 이름을 바꾸고 외국인 투자와 관광을 개방할 때까지 미얀마는 베일에 가려진 나라다.

양곤 시내

 

그러나 자유화 운동이 일어나니 88년 자유운동을 탄압하고 5,000여명을 목잘랐다고 한다. 그후 아무도 자유화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싹을 잘랐다고나 할가... 그래도 해외에서 미얀마의 자유를 부르짖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얼마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웅산 수지여사를 만나러 갈려고 비자를 신청했다가 거절 당한 사례만 봐도 알만 하다. 미국이 경제 원조를 하지 않으니 경제가 더욱 나뻐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 굽히지 않는다.

얼굴에 깐따나 바른 아이

 

아웅산 수지 여사는 아직도 가택 연금 상태다. 저녁 6시 이후면 그 일대가 교통 통제된다. 그 곳을 지나 갈려면 멀리로 돌아가야 한다. J사장이 우리를 위해 마련한 저녁 초대 장소가 우웅산 수지 여사 집앞을 통과해야 하기에 좀 멀리로 돌아서 갔다. 국민들은 아무런 불평의소리도 없이 그렇게 묵묵히 따른다. 정말 그런지 알수 없다. 양곤대학이라면 한때는 서울대학교 보다 더 유명했단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학과가 폐쇄되고 일부 의학, 약학, 공과대, 미대등이 열려있다. 양곤대학교에 들어가 봤더니 폐허 같이 느껴진다. 정부에 반대하는 학과는 완전히 폐쇄 시켰다고 한다.

해 저무는 슐레 파고다

 

최근에는 수도를 양곤에서 "삔마나"로 옮겨 큰 도시의 전기 사정이 형편없다. 수도를 옮기면서 국민들의 합의를 도출하고 옮긴것이 아니라 불교계 높은 몇몇과 최고위직의 몇사람이 결정하여 만달레이쪽 중부로 옮겼다고 한다. 저녁이면 가게마다, 식당마다,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에 양곤 시내가 시끄럽다. 전국의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하루에 8시간 정도만 전기가 들어온다. 그러니 게스트 하우스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수도 없다. 발전기는 집안에서 돌리는게 아니고 항상 밖앝에서 돌리니 돌아가는 소리와 그 열기가 더욱 우리들을 덥게 느끼게 한다.

이른 아침 회교도들이 많이 살고 있는 거리 식당

 

미얀마의 새해는 4월 두째주에 시작하는 띵잔(물을 뿌리는 축제)이 끝나면 시작 된다고 한다. 이 기간 동안 젊은이들이 술도 마시고 길거리를 나다닌다고 한다. 이때 일년동안 준비한 돈으로 론지 대신 청바지를 사입고 운동화도 신고 다닌다. 물론 순한 미얀마 젊은이들도 이 기간 동안 종종 싸움질도 한단다. 축제 기간 3일 동안만 물을 뿌린단다. 모든걸 싰어낸다는 의미라고 한다. 미얀마에서는 결혼 하기전 선볼때 발을 먼저 본다고 한다. 역시 검거나 험하면... 잘 사는 사람들은 부모들이 연애 결혼 보다 중매를 선호한단다.

농촌 풍경

 

길거리에 나가면 뿜어대는 차량 매연 때문에 숨통이 막힐정도로 공기가 탁하다. 아직도 2차 대전때의 차량이 굴러다니고 있으니 ... 굴러 다니는 차들의 평균 수명이 30년은 넘어 보인다. 달리는 고철이라고 할수 있다. 1996년 이후 차량 수입이 전면 금지되었으니 최신형 자동차라도 10년은 되었다. 물론 고위층을 통하여 새차들이 짬짬이 들어오고는 있는가 보다. 이런걸 이권이라 하지...

 

중국의 진출이 빨라지고 있다. 금년 하반기 부터는 북부 만달레이로 중국 철로가 연결되어 중국에서 철로로 쉽게 들어올수 있다. 공산품들이 물밀듯이 밀려오면 미얀마 국내 산업은 고사된다. 지금도 시장의 모든 공산품은 중국제가 판을 치고 있다. 인도와는 국민 감정이 좋지 않다고 한다. 영국 식민지때 만달레이의 마지막 왕이 인도로 잡혀가 죽었기 때문이란다.

최대 와불이라는데...

 

외국인 투자도 그리 쉽지 않다고 한다. 권력층과 손을 잡아야 가능하고, 집과 자동차를 사도 자기 소유로 할수 없으니 안전 장치를 하는데 또 10% 가까운 돈이 든다고 한다. 자동차나 휴대폰 값이 엄청 비싸다. 중고 프린스 자동차가 2,500만원 정도, 핸드폰이 500만원 정도 하지만 통화 가 잘 않될때도 있단다. 미얀마에서 인터넷을 할려면 엄청 느려 인내심이 필요하다. 아예 인터넷을 포기하고 여행 다닌다. 전화 사정도 좋지를 않아 한국으로 전화하는것도 포기한다.

 

이곳도 동남아 다른 나라와 다름없이 한류가 휩쓸고 있다. 한국이라면 무조건 좋아하고, TV에서 매일 한국 드라마가 방영된다. 한국의 유명 탤런트들(권상우. 송혜교 등)의 사진이 길거리에서 팔리고 있고, 야외 광고판에도 등장한다. 초상권 침해 이지만 손이 거기 까지 미치지 않으니 할수 없지 않는가... 정부는 한국에서 새마을 운동을 배워 국민들을 움직여 볼려고 하나 정권 유지에 초점을 맞추니 잘 되지 않고 그냥 주저 앉은 상태라 한다. 젊은이들도 한국에 와서 일 하고 싶어 한다. 주워 담은 이야기 첫회분은 이런 정도로 하고 다음은 미얀마 교육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와 살아가는 힘을 느끼게 하는 재래 시장 돌아본 이야기를 옮겨 볼가 한다.

 

동자승들의 나들이

 

차이나 타운

 

수박이 시원하기는 한데 좀 싱겁다.

 

만달레이 공항 석양의 관제탑